2017. 5. 19. 11:43
흔히 ‘동묘’하면 동묘구제시장을 많이 찾으시는데요. ‘동묘’는 누구의 묘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동묘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의리남을 모시는 동묘로 함께 떠나보시죠!
서울 동묘공원가는 법
동묘공원은 지하철 1호선, 6호선 동묘역에서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여요.
동묘공원 앞에도 구제시장이 열려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옷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한데요. 동묘공원을 둘러본 후 요즘 인기 있는 구제시장도 구경해보세요!
동묘 이야기, 동묘가 세워진 시대 속으로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어 있는 동묘의 주인공은 바로 『삼국지』의 영웅 관우(關羽)입니다. 동묘는 관우를 모시는 묘우(廟宇)로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영웅도 아닌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우리나라에 세워진 걸까요? 동묘가 생긴 배경에는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동묘는 선조 32년(1599년)에서 선조 34년(1601년) 동안 2년에 걸쳐 지어졌습니다. 이 시기는 바로 왜군과 싸우던 임진왜란(1592년~1598년) 시기였는데요. 동묘의 건축 배경이 바로 임진왜란이라는 전란과 관계가 있답니다. 당시에는 조선 시대 최초의 붕당 정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때라 국력을 키우기보다 당파 싸움에만 다들 눈이 멀어있었어요. 이때를 틈타 왜군이 조선을 침략했고 급해진 조선은 절박하게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합니다.
군사를 파병한 명나라는 왜군과 싸워 이길 때마다 이 모든 것은 관우의 신령이 나타나 도왔기 때문이니 관우의 사당을 지우라고 제안합니다. 명나라 왕이었던 신종은 친필 현판과 동묘를 짓기 위한 비용을 지원했고 조선 또한 군사들이 관우의 정신을 본받으라는 의미로 동묘를 짓습니다. 이렇게 동묘의 건축 배경은 자력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했던 약소국의 설움이 배어 있어요.
관우, 어디까지 알고 있니?
위인 관우
삼국지에서 유비, 장비와 함께 도원결의를 맺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 관우. 관우는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존재인가요? 먼저 관우의 외모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관우는)신장이 9척(약 214cm)이나 되고 붉은 얼굴에 2척(60cm)이나 되는 길고 아름다운 수염이 있으며 82근(50kg)이나 되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르고 적토마를 탄 용맹한 장수이다”
또한 관우는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화살을 맞은 어깨를 째서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하는데도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다는 일화도 있어요. 이처럼 중국에서 관우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물론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고, 후대에 전해지면서 각색되었겠지만 중국인들이 관우를 어떻게 느끼는지 쉽게 와 닿습니다.
중국의 3대 종교 유교와 불교, 도교에 이르기까지 관우는 굉장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특히 관우는 무신이나 재신 이외에도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신이에요. 예를 들어 도교에서 관우는 천계를 지키는 신,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신, 재앙을 미리 예견하는 신, 요괴를 퇴치할 수 있는 신 등으로 활약합니다.
으리으리한 관우의 의리
관우의 의리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그의 화려한 외모도 인상 깊지만, 조조의 유혹을 뿌리치며 유비와의 의리를 지킨 일화는 따뜻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관우는 하비성에서 조조의 급습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유비를 위해 항복하며 그의 포로로 붙잡혀 있었습니다. 이때 조조는 관우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후한 대접을 하고 많은 보물을 주었는데요. 관우는 이것을 모두 거절하고 유비에게 가기 위한 적토마만 받습니다. 조조는 무슨 방법을 써도 관우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관우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고 해요. 운명의 장난과도 같이 먼 훗날 이 두 사람은 적벽대전의 마지막 장소인 화용도에서 다시 마주치게 됩니다. 이번에는 조조가 관우에게 위협을 당하지만 관우는 조조가 지난날 자신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기억하며 조조를 풀어주는 것으로 보은합니다. 유비에 대한 의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적인 조조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깊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관우의 일화가 감동을 주는 까닭은 사람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자신의 소신도 잃지 않은 관우의 태도 때문인 듯합니다.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요즈음 마음속에 깊게 새겨야 하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중국 형주 관제사에서 관운장을 모신 사당)
중국인들에게 관우란?
관우는 중국인들에게 의리와 충성, 뛰어난 무예와 용맹을 상징하는 인물로 각별히 숭배되는 인물이에요. 중국 송나라 이후에는 관제묘를 세워 그를 무신이나 재신으로 모시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중국 전역에 관우를 왕보다 승격화시켜 추모하는 관제묘가 30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나요? 그런데 조조의 재물을 모두 거절하고 오직 적토마만을 얻어간 관우가 어째서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일까요?
그 답은 관우의 의리에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관우의 의리 있는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요. 사업할 때 고객을 속이지 않고 진정성 있게 대해야 재물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중국 민간 가게에서는 관우를 그린 그림이나 장식품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동묘가 가진 의미
선조 이야기
동묘를 지은 선조는 관우와는 다르게 의리를 저버린 군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선조는 왕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었어요. 적통이 아닌 후궁 출신의 서자였기 때문이지요. 조선 역사상 최초였기 때문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출신만이 그의 정치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선조는 통치력도 부족했습니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으며 정치권력의 싸움을 안정시키지 못해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보여주는데도 실패합니다.
(안동 관왕묘. 경북 안동 태화동에 있는 관우 소상소상(塑像:인물 모형)을 봉안한 사당, 사진출처 | 문화재청)
선조와 백성의 이야기
선조는 학문에 소질이 있었고 총명했다고 해요. 그러나 백성을 대하는 군주로서는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그가 기대했던 장군 신립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그는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가기를 결심합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주어진 자리에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위기를 극복해 나아가는 지도자로서는 부족한 모습이지요. 백성들은 그의 무책임함에 크게 실망하다 못해 분노했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경복궁과 창경궁 등의 여러 궁궐을 방화하고 형조에 있던 노비 문서도 소각합니다. 이로 인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선조의 부족한 역량이 드러납니다. 백성과 군주로서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의리도 저버린 선조의 모습에서 의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의 몰락을 볼 수 있습니다.
의리의 대명사이자 영원한 영웅으로 인정받고 있는 ‘관우’와 자신의 사람들을 지켜주지도 못한 채 적으로 만들었던 ‘선조’의 이야기가 동묘에서 묘하게 교차합니다. 지극히 낮은 자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느냐, 즉 인간관계에서 의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동묘 공원
(동묘공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중문)
서울 동묘공원은 1963년에 보물 142호로 앞뒤에 중심건물 2개가 놓인 17세기 중국식 전형적인 제사 시설의 건축 모양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런 구조는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위인의 묘에서 직접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건축양식을 ‘묘사’라고 해요. 동묘는 명나라사람의 감독하에 조선인이 지었기 때문에 중국의 묘사를 그대로 본떴다고 합니다.
(중문을 지나고 나서 보이는 정전)
정전의 실내는 전실과 본실로 나누어져 있어요. 전실은 제사를 위해 있는 곳이고 본실에는 관우와 관우의 아들, 부하 장군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정전 앞에는 굉장히 큰 나무가 있어요. 이 나무의 푸르른 모습이 마치 관우의 한결같은 의리를 연상시킵니다. 동묘공원 내부에는 큰 공터도 있고 벤치도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 딱 좋아요. 동묘 근처에 있는 DDP나 청계천을 구경하다 한적한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동묘를 찾아보세요.
동묘 구제시장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동묘는 어떤 동네일까 궁금했는데, 이번 취재를 통해 관우의 묘라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또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도 공부하는 계기가 됐고요. 동묘 구제시장 구경하러 가실 때 동묘도 한 번 들러보세요. 관우의 의리를 되새기며 걸으면 의미 있는 산책이 될 거예요. 지금까지 가꿈사 10기 김성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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