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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우수상 - 도킹하는 우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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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3. 10:00


사람 하나하나가 각자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면 지하철은 수많은 우주가 하나의 방향으로 겹쳐지는 흔치 않은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는 수많은 우주가 겹쳐지고, 멀어지면서 도시에 숨을 불어넣는다. 가끔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 커다란 우주들이 만나는 장소가 아무런 사건 없이 그저 스쳐 가는 장소로만 존재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나는 수많은 우주를 스쳐 지나가며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가 스쳐 지나갈 뿐인 세계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우주에서 유영할 수 있게, 혹은 다른 사람이 나의 우주에서 유영할 수 있게 되는 관계가 된다면 그건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일 것이라고. 

스무 살 무렵의 나는 많은 관계를 맺고 싶었다. 입대 전에는 동아리 활동, 과 활동, 대외 활동 등 이곳저곳에 얼굴을 들이밀었고, 그 결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났었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아마 단순히 사람이나 관계가 고픈 것보다는 그런 관계들을 통해 강박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싫어하고 조용한 곳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이 술자리 저 술자리를 기웃거리면서 잘하지도 못하는 술 게임에 끼었던 것은,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악을 쓰는 내 나름의 필사적인 투쟁이었다. 그 시절 나의 우주는 그렇게 비틀대며 다른 우주들에 도킹을 시도하고 있었다. 

도킹이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느낀 것은 군에서 전역한 직후였다. 복학한 학기에, 내가 알았던 사람들은 어느새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그들과 나의 관계를 정의하는 말은 ‘그냥 아는 사이’였고, ‘그냥 아는 사이’에서 서로의 우주 사이에는 그저 사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학교에서 지나가며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면 서로의 눈에서는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가 났고, 우리의 우주는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기를 쓰며 시도했던 도킹, 관계란 것이 겨우 표피적인 것에 불과했음에 나는 좌절했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싫어하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언제 밥 한번 먹자.’란 말은 무책임, 혹은 거리 벌리기로 느껴졌고, 나는 그 말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우주는 어디에도 도킹하지 못한 채로 다른 우주를 미워하면서 외롭게 떠돌고 있었다.

맥없이 떠돌고 있었던 나의 우주가 다시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은 정말 우연히도 수업 때문에 읽게 된 시들 덕분이었다. 수업의 주제는 ‘시를 통해 진짜 나를 찾기’였다. 사막에서 너무 외로워 자신의 발자국이라도 보려고 뒤로 걸었다는 시와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이 청춘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나는 지독히 눈물을 흘렸다. 누구나 그렇구나. 혼자 있으면 세상에서 내가 지워진 것 같다는 느낌에 괴로워했던 나는, 외롭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필연적이라고 노래하는 시들에 위로받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외로움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가 되니 나를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하는 나, 사람들이 많은 회식자리에 가면 피곤함을 느끼는 나, 액션 영화보다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보였다. 새로웠고,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기분 좋은 짜릿함 이 구부정한 어깨를 펴게 했고, 목을 꼿꼿이 세우게 했다. 정말로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오만했던 것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며 쉴 새 없이 흔들리던 나의 우주, 나 자신도 그 안에 어떤 행성들이 있는지 몰라 흔들리던 나의 우주가 다른 우주에 제대로 도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관계를 맺기 위해 보여주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가슴이 뻥 뚫린 인형에 불과했음을 알았다. 나는 인사를 청하며 내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악수를 청하면서 손을 내밀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 예의 없는 나에게 표면만을 보여주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을 미워했던 내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은 서로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진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실망할까, 그래서 상처받을까 무서워 내 진짜 모습을 꼭꼭 숨겨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상처받아도 괜찮다. 상처받아 아픔을 겪어도 그 아픔 또한 내가 나임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스물다섯의 나는 나를 사랑하기 시작함으로, 관계 맺음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어딜 가든 ‘너답다.’는 말을 듣는다. 나의 우주는 다른 우주에 무사히 도킹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우주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서로의 우주에 무사히 도킹하고, 마음껏 서로의 세계를 유영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갈 뿐인 이 세상에서 끝끝내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본 게시물은 2016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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