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7. 16:40
안녕하십니까. 꽃바람 연가입니다. 겨울이 조금씩 깊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없는 시기라고 하지만 차가운 계절 한가운데서도 피어나는 꽃들이 있습니다. 동백꽃, 보춘화(춘란), 꽃양배추, 시클라멘, 칼랑코에, 칼란디바, 크리스마스로즈, 포인세티아 등 찾아 보면 생각보단 많아요. 자연은 봄이 올 때까지 정지상태인 듯 보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식물들이 이미 봄을 맞을 준비를 끝내 놓았다는 것을요. 대표적으로 나무는 자기만의 독특한 ‘겨울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이들과 자연에 나가 나무의 겨울눈을 한번 관찰해 보세요.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이자 공부가 된답니다. 겨우내 나무는 겨울눈을 잘 보호하며 그 속에 생명 에너지를 축적할 겁니다. 봄이 오면 밋밋하고 구분하기 어렵던 겨울눈이 어떤 것은 잎눈으로 다른 것은 꽃눈으로 활짝 등장하겠지요. 따뜻한 봄날이 벌써 그리워집니다.
오늘은 ‘꽃말’에 대하여 알아보려 합니다. 꽃말은 꽃이 피는 식물뿐 아니라 대부분의 식물에 붙여져 있지요. 식물에 상징적 의미를 담은 단어나 문장을 붙여놓은 것입니다. 개개 식물에 붙이는 이러한 꽃말뿐만 아니라 국가는 국화(國花)라는 것을 지정하기도 합니다. 또 도시도 그 도시를 상징하는 식물을 시목(市木)이나 시화(市花)로 정합니다. 식물이 가지는 상징성을 통해 국가정신이나 시민정신을 고취시키는 방법의 하나지요.
식물의 상징성 활용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수천 년 동안 민족, 국가, 정치, 종교, 사회, 문화적인 배경 하에 전해 내려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경전이 아닐까 해요. '기독교 성서'가 그렇지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통틀어 경전에 산재해 있는 식물 정보와 식물을 빗댄 각종 비유는 종교학자들뿐 아니라 식물학자들에게도 연구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만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광대한 불경에도 엄청나게 많은 식물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답니다.
오늘 꽃이야기에서 이런 방대한 내용을 다 펼치지는 못하고 ‘꽃말’의 유래에 대하여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꽃말'에는 '사랑', '인내', '감사'와 같은 단어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나를 잊지 마세요'처럼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물망초는 꽃말이 꽃이름(영어 꽃이름으로도 Forget-me-not을 쓴다)이 된 아주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꽃과 상징 그리고 전설
이미지 출처: 강아지똥(권정생, 길벗어린이)
식물의 상징은 이야기로 남겨지고 대대로 전달됩니다. 우리가 접하는 야생화도 전설 하나씩은 담겨 있지요. 어떤 이는 이런 꽃전설을 모아 책을 내기도 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문화를 전달하고, 교육도 되죠. 꽃들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생태적 정보가 이야기에 담겨서 전달되고 교육됩니다. 식물의 성질(독초, 약초 등)도 담기고, 꽃과 잎의 모양과 색깔, 때론 식물 전체의 생태 모습도 담깁니다. 꽃의 쓰임새나 효능을 소재로 한 것도 있지요.
권정생 선생님(1937 - 2007)의 동화 <강아지똥>은 기피되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하찮은 존재인 '강아지똥'이 자기희생적이고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림책입니다. <강아지똥>에서 '민들레'라는 꽃이 없었다면 작품의 가치는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들레 꽃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국어학자들은 ‘문들네(문둘레)’ 즉, 대문 근처에서 흔히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어원을 추적하여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른 유래설도 있고요. 민들레의 영어 꽃이름은 댄디라이언(Dandelion)을 씁니다. 댄디라이언의 어원은 프랑스어 'dent de lion'입니다. ‘사자의 이빨'이라는 뜻이죠. 민들레 잎이 뾰족뾰족한 것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민들레의 꽃말은 '성실(Faithfulness)', '행복(Happiness)', '사랑의 신탁(Love's oracle)'이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꽃말에 대하여 알아볼까요?
꽃말이란?
꽃말이란 꽃이 가지고 있는 특징 또는 성질 등에 연유한 어떤 상징적인 뜻을 꽃에다 부여한 것을 말합니다. 신화(그리스, 로마 신화 등 민족신화), 전설, 종교(그리스도교, 불교) 등에 바탕을 둔 것도 있고, 꽃의 모양, 색깔, 향기, 피는 계절 등에 유래하여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꽃말은 하나 또는 여러 종류의 꽃을 사용해(꽃 선물, 꽃꽂이 등)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하는 일종의 비밀 통신수단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꽃말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 배경이지요. 서양에서 꽃말은 꽃을 받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랍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장미(Rose) 꽃다발, 어버이날 드리는 카네이션 꽃바구니입니다. 장미는 ‘사랑(Love)’을 전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고, 분홍색(pink) 카네이션은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I'll never forget you)'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게 다 꽃말인 거죠.
꽃말은 영어로 ‘더 랭귀지 오브 플라워즈(The language of flowers)’, 즉 ‘꽃들의 언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플로리오그라피(Floriography)’라고 쓰죠. 한 마디로 꽃에 부여된 상징들을 풀이하거나 쓰는 일, 기술, 학문을 말합니다.
꽃말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꽃말을 활용하는 문화는 서양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실 전세계적인 것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 포괄적이고 정리된 문화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무래도 유럽 쪽입니다. 꽃말의 기원이 나타나고 처음으로 공식화된 시기를 17세기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국가로 보면 '오토만 터키(Ottoman Turkey)'였지요. 그곳에 ‘셀람(sElam)’이라는 아라비안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뜻은 ‘인사하다(hello)’라는 의미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꽃을 선물하고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웃을지 모르겠지만, 글자를 읽고 쓰기가 불가능했던 '내연 관계의 연인'들이 꽃을 통해 '모종의 의미'를 주고 받은 것이었습니다.
터키인들의 꽃말을 유럽으로 소개한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한 명은 오브리 드 라 모레이레이(Aubry de La Mottraye, 1674 - 1743)입니다. 모레이레이(Mottraye)는 터키에서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회고록이 1727년에 프랑스어로 출판되었는데, 그 속에 터키의 꽃말 문화에 대한 것이 포함되어 있었고요. 회고록은 영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한 명은 터키인들의 숨겨진 문화를 잘 모아서 정리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터키의 콘스탄티노플(지금은 '이스탄불 Istanbul')에 주재한 영국 대사의 부인이었지요. 이름은 메리 워틀리 몽테규(Mary Wortley Montagu, 1689 ~ 1762)입니다. 남편이 터키 대사로 있던 시절에 그녀가 쓴 편지가 1763년 사후에 정리되어 출판되었는데, 요즘 말로 아주 대박이었습니다. 그 속에 ‘비밀의 꽃말(Secret Language of Flowers)’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에 의해 유럽 세계에 꽃말이 알려지게 된 것이지요.
사전 형태로 출판된 책자는 독일인 동방학자인 요셉 함머 푸그스탈(Joseph Hammer-Purgstall)이 1809년 발간한 <꽃 언어 사전(Dictionnaire du language des fleurs)>입니다. 꽃의 상징적 의미(symbolic definitions)를 담은 리스트를 제공한 것이었지요.
1819년에는 더 정리된 형태로 프랑스에서 꽃말 사전이 출판되었습니다. 저자는 샬롯 드 라 투르(Madame Charlotte de la Tour)인데, 본명은 루이즈 코탕베르(Louise Cortambert)입니다. 꽃말 사전의 이름은 바로 <꽃들의 언어(Le Langage des Fleurs)>였지요. 작은 소책자로 만들어졌는데, 이것 역시 대박이 났습니다. 대략 800여 개 정도의 꽃말이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구할 수 있었던 꽃의 대부분에 꽃말을 붙였고, 특히 장미는 송이 수에 따라 꽃말을 달리 붙였다고 합니다. 장미 세 송이는 ‘사랑합니다(I love you)’, 열 송이는 ‘당신은 완벽해요(You are perfect)’, 열세 송이는 ‘영원한 친구(Friends forever)’, 구십구 송이는 ‘내 평생 당신을 사랑하겠어요(I will love you all the days of my life)’, 백팔 송이는 ‘저와 결혼해 주실래요?(Will you marry me?)’라고 했다니 재미있지요.
이러한 꽃말 책의 출판 영향 등으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1810~1850년경에 꽃말 문화가 대유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국, 프랑스뿐 아니라 벨기에,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신식민지였던 미국에까지 꽃말 문화가 확산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빅토리아 여왕
꽃말이 가장 성행하고 풍성하게 발달한 시기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재직한 시기인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로 볼 수 있답니다. 빅토리아 시대가 바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은 때이며, 유럽사에 있어서 '영국의 시대'라고 할 만큼 영국이 강해진 시기이지요. 이념적으로는 산업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제국주의가 성행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영국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화되었지만 중산층이 만들어진 시기이며, 하층민과 불쌍한 식민지 국민들은 핍박을 받던 불행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사회는 경직되어 있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여인들은 꽃을 주고 받으며 침묵의 언어(silent language)인 꽃말을 대유행시켰습니다. 현재의 꽃말은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요. ‘꽃말이 영국식이다'란 말은 여기서 나왔지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사만다 그레이의 <꽃들의 비밀언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 전해오는 꽃말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었지요. 이 책의 서문인 '들어가기'에는 영국 꽃말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조금 길긴 하지만 잘 요약된 것이므로 같이 한 번 보시죠.
"낭만적인 내용에서 종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꽃들은 특별한 의미를 전달해 왔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사람들은 ‘터지 머지(tussie-mussie)’라고 부르는 꽃다발을 만들어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엄격한 격식들을 요구하던 사회 속에서 자신의 뜻과 감정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편으로 꽃의 상징에 기초한 정교한 언어들이 발달한 것이다. 그 시대의 꽃 언어는 주로 사랑과 우정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아마도 꽃다발을 받는 사람의 인품을 칭송하기 위해서라든가 함께 나눈 즐거운 경험들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예를 들어 블루벨은 받는 이의 충성심과 이타적인 성품을 찬미한다는 의미였고, 글라디올러스는 성실성과 신의를 대변했다. 한편 예의를 갖추거나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즉 스위트피를 보낸다면 ‘아쉽지만,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네요.’를 뜻했다.
그러나 꽃들이 늘 사랑의 증표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보다 복잡하거나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프렌치 메리골드는 ‘당신은 질투쟁이야.’라는 비난이었고, 오렌지색 백합은 ‘당신은 너무 잘난 척해.’라거나 ‘난 당신이 싫어.’라는 뜻이었다. 꽃다발 크기가 작을수록 각각의 꽃은 특별한 의미를 내포했고, 심지어 꽃을 구성한 방식도 중요했다. 어떤 꽃들은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 만큼, 꽃을 보낸 사람의 진의를 해석하기 위해 부케의 전체적 구성도 고려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흰 백합은 위대한 존재를 상징했지만, 순수함과 처녀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오늘은 꽃말의 유래와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던 꽃말의 유래를 살펴보고 나니 상식과 지식이 넓어진 듯한 느낌이 들지요. 차가운 겨울 항상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한파가 건강과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최근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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