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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꿈사랑

치명적 유혹의 덫, <이중배상>

|보험상품|

 

안녕하세요, 교보생명 블로그 독자 여러분. 몇 차례에 걸쳐 영화 관련 포스팅을 하게 된 교보생명 블로그 사내필진 3기 씨네게이즈(cinegaze) 입니다. 블로그를 통해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제가 앞으로 소개 드릴 영화는 보험을 직간접적 소재로 다루거나, 자연 또는 사회가 야기한 위험과 재난을 다루는 작품들입니다. 나름 재미있고 인상 깊었던 영화들로 선정해 봤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영화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유용한 팁을 많이 제공해 드리는 한편, 간간히 작품의 사회∙역사∙문화적 배경에 대한 얘기도 덧붙여 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영화를 통해 여러분과 보다 넓고 깊게 소통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라면서 첫 번째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치명적 유혹의 덫, <이중배상> - 하드보일드와 필름 느와르

 

제가 소개하려는 작품들의 목록 첫머리에는 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감독의 <이중배상 (Double Indemnity)>(1944)[i]이 올라 있습니다. 미국 고전영화, 특히 필름 느와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인데다 보험사기를 정면으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거든요.

 

▲ 빌리와일더 감독

감독 빌리 와일더는 190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영화 경력을 시작했고 1930년대 히틀러의 집권[ii] 후 미국으로 망명해 <이중배상> 외에 <잃어버린 주말 (The Lost Weekend) >(1945), <선셋대로 (Sunset Boulevard) >(1950), <제17포로수용소 (Stalag 17) >(1953), <사브리나 (Sabrina) >(1954), <정부 (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1959),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The Apartment) >(1960) 등 여러 명작을 남겼습니다.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이 출연한 <사브리나>와 마릴린 몬로 (Marilyn Monroe) 가 출연했던 <뜨거운 것이 좋아>는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작품이죠. 하지만 그의 대표작으로는 아무래도 글로리아 스완슨 (Gloria Swanson) 의 영화사에 남을 명연기로 유명한 <선셋대로>와 오늘 소개 드리는 <이중배상>을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936년 리버티 매거진에 발표된 제임스 M. 케인 (James M. Cain)의 동명소설을 빌리 와일더와 레이몬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가 공동으로 각색했습니다. 챈들러는 미국 현대 범죄소설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며 소위 하드보일드(Hardboiled) 스타일을 정립한 소설가에요. 이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그에게 오마쥬를 바쳤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펄프 픽션 (Pulp Fiction)>(1994)[iii]이나 그래픽 노벨리스트 프랭크 밀러 (Frank Miller) 와 신세대 악동 로버트 로드리게즈 (Robert Rodriguez) 가 공동 감독한 <신 씨티 (Sin City)>(2005)도 챈들러에게 온전히 경의를 표한 작품들입니다.

 

  

  <펄프 픽션>(1994) (출처: IMDB)                         <신 씨티>(2005) (출처: IMDB)

 

하드보일드의 거장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답게 오스카상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상업적∙비평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이중배상>은 실질적으로 미국 필름 누아르 (Film Noir)의 서막을 연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이 영화에 도입되면서 발전한 장르가 바로 미국의 필름 느아르인데요, 몇 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 1940~50년대 절정에 달했던 장르로서 도시적 배경과 콘트라스트 강한 조명, 비장한 대사, 음모와 파멸의 플롯, 사립탐정과 팜므 파탈 (Femme Fatale) 같은 캐릭터의 등장 등을 공통적인 요소로 꼽을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빌리 와일더와 레이몬드 챈들러의 공동작업은 정작 서로에겐 그리 유쾌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와일더 감독은 “그는 나를 지독히 괴롭혔다”고 털어놓았고, 챈들러는 “고통스러웠던 경험”으로 회상했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저 감사할 밖에요.

 

치명적 유혹의 덫, <이중배상> - 부감 High-angle과 양각 Low-angle

 

자, 그럼 이제 영화의 줄거리를 본격적으로 살펴볼까요? 

퍼시픽 보험회사 (Pacific All Risk Insurance Co.) 의 촉망 받는 세일즈맨 월터 Walter (프레드 맥머레이 Fred MacMurray )는 자동차보험 갱신을 권하기 위해 디트릭슨 (Mr. Dietrichson)의 집을 방문했다가 젊고 매력적인 안주인 필리스 (Phyllis, 바바라 스탠윅 Barbara Stanwyck) 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맙니다. 요염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의 필리스는 서른 중반의 독신에 야심만만한 월터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죠. 두 사람의 첫 대면 장면에서 카메라는 현관에 들어선 월터를 부감(위로부터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2층 난간에서 월터를 맞는 필리스를 앙각(아래에서 위로 우러러 보는 시선)으로 잡아 이후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합니다. 

  

<이중배상> 중에서 (출처: Flikr Creative Commons Image uploaded by Laura Loveday)

 

월터의 두 번째 방문, 필리스는 남편을 피보험자로 재해보험에 가입하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그것도 남편이 모르게 말이죠. 불순한 의도를 직감한 월터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를 뜨지만 이미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남편에게 학대 당하고 있다며 읍소하는 필리스에게 결국 넘어가고 말아요. 치명적 유혹의 덫에 걸려든 월터는 보험에 대한 전문지식을 활용해 살인계획까지 공모하기에 이릅니다. 도박판 감시자가 도박판을 통째로 먹기로 결심하는 순간처럼, 필리스와 만난 후 내면의 어두운 욕망에 비로소 눈을 뜬 거죠.

 

<이중배상> 중에서 (출처: Flikr Creative Commons Image uploaded by Laura Loveday)

 

한편, 월터의 회사에는 바톤 키즈 (Barton Keyes, 에드워드 G. 로빈슨 Edward G. Robinson)라는 유능한 보험심사역 (Claims Manager) 이 함께 근무하고 있어요. 풍부한 경험과 정연한 논리, 예리한 직감을 겸비한 키즈는 월터에게 매우 호의적이지만, 음모를 진행 중인 월터는 그를 대할 때마다 서늘함을 느낍니다.

언젠가 키즈는 이렇게 얘기하죠. “보험심사역은 외과의사나 마찬가지야. 저 책상은 수술대, 연필은 메스인 셈이지. 저 서류들은 단순한 양식이나 통계치, 청구서가 아니라네. 살아있지. 저기엔 드라마와 뒤틀린 희망과 헛된 꿈이 담겨 있다구."

 

 치명적 유혹의 덫, <이중배상> - 이중배상과 팜므파탈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는 것으로 속여 재해보험 청약서에 서명을 받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은 디트릭슨의 여행을 기회로 삼기로 합니다. 그리고 대중교통 재해시 일반재해 보험금의 두 배를 지급 받는 조건, 즉 “이중배상”에 대해 의논하죠. 이에 따라 필리스는 원래 자동차를 이용하려던 남편을 설득해 기차를 예약하게 합니다. 드디어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월터와 필리스. 기차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을 살해한 월터가 대신 기차에 올라탑니다. 남편이 실족사한 것으로 꾸미기 위해서죠. 필리스는 미리 약속한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기차에서 뛰어내린 월터와 함께 남편의 시체를 선로 위로 옮깁니다. 모든 계획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날카로운 키즈조차 사고사가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눈치입니다. 

자축을 겸한 밀회를 즐기기 위해 월터의 집에서 만나기로 하는 두 사람. 그러나 역시 키즈가 문제예요. 갑자기 월터의 집을 찾은 키즈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재해 보험에 가입하고 2주 만에 정말로 사고를 당하는 일은 확률적으로 매우 가능성이 낮다며 디트릭슨의 아내가 수상하다고 말하죠. 문 밖에서 필리스는 두 사람의 대화를 고스란히 듣게 됩니다. 서스펜스를 직조하는 빌리 와일더의 솜씨가 십분 발휘된 장면이죠. 키즈가 떠난 후 월터와 필리스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흐릅니다. 당분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월터에게 필리스는 둘의 사이가 멀어지는 게 두려울 뿐이라고 답합니다.  

이어 디트릭슨의 딸 롤라 (Lola Dietrichson, 진 헤더 Jean Heather)를 통해 필리스의 과거가 하나 둘 드러납니다. 6년 전 투병 중인 롤라의 모친을 돌보던 간호사가 바로 필리스였고, 석연찮은 이유로 모친이 사망한 후 디트릭슨과 결혼했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사고 이틀 전엔 미리 상복까지 걸쳐보더라며 결코 보험금을 받게 놔두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롤라. 게다가 기차에서 디트릭스으로 가장한 월터와 마주쳤던 목격자까지 나타납니다. 위기를 느낀 월터는 필리스에게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라고 종용하고, 필리스는 월터와 롤라의 사이를 의심하며 모든 걸 당신이 직접 계획하지 않았느냐고 협박하죠.

이 영화에서 필리스를 연기한 바바라 스탠윅은 팜므 파탈, 즉 치명적 매력으로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여인의 전형을 훌륭히 소화해 냅니다. 다만 필리스에게는 미워할 수만은 없는 어떤 애잔함이 묻어 나지만요. 결국 월터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고, 이제 영화는 비극적인 대단원을 향해 치닫습니다.

 

 치명적 유혹의 덫, <이중배상> - 보험사기, 돌이킬 수 없는....

 

<이중배상>은 키즈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는 음성 메모를 녹음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월터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됩니다. 빌리 와일더가 즐겨 사용하는 전개 방식이죠. <선셋 대로>에서는 심지어 이미 사망한 주인공의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하기도 해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요즘 영화들처럼 반전(反轉)을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농밀하고 힘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꼭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중배상>에 대해 얘기하면서 보험사기를 빠뜨릴 수 없겠죠? 근래 우리나라도 보험사기 소식이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죠. 개중엔 연체동물이 등장하는 엽기적 사건도 있었고, 지방의 폐광 도시를 거점으로 거주민 상당수가 연루돼 충격을 준 사건도 있었습니다. 사회 전반에 모럴 해저드가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방지센터(http://insucop.fss.or.kr)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만 무려 4,533억원에 달한다고 해요. 보험, 특히 생명보험 관련 범죄는 계약 관련 당사자 간의 관계를 고려할 때 패륜 또는 반인륜적이기 십상이죠. 또한 보험계약 성립의 기초가 되는 위험률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이므로 다른 가입자들에게도 커다란 손해를 끼치고, 사회적 안전장치를 무력화하는 중대 범죄입니다. 그러리 없겠지만 주변에 그런 분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중배상>을 권해 주세요. ^^;

 

치명적 유혹의 덫, <이중배상> - <이중 배상> 두 배로 즐기는 법

 

- IMDB

IMDB (International Movie Data Base)는 전세계 영화들의 데이터 베이스를 집약해 놓은 사이트입니다. 심지어 아직 소개되지 않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국 영화들도 여기에 가면 찾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 사이트라는 게 함정이지만 영화에 관련해 이만큼 풍성한 정보의 보고도 달리 찾기 어렵습니다.

* IMDB <이중배상> 페이지 (http://www.imdb.com/title/tt0036775/?ref_=sr_1)

 

- KMDB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KMDB(Korean Movie Data Base)도 있지요. 수입 개봉된 해외영화들에 대한 자료는 물론,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자료가 특히 풍부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개봉하는 모든 영화는 의무적으로 한국영상자료원에 프린트 한 벌씩을 제출해야 하거든요. 물론 법제화되기 이전의 작품들은 따로 수집 및 복원을 해야 하지만요.

* KMDB <이중배상> 페이지 (http://www.kmdb.or.kr/movie/md_basic.asp?nation=F&p_dataid=26759&keyword=%C0%CC%C1%DF%B9%E8%BB%F3)

 

<이중배상>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DVD로 출시된 바 있지만 보지 못한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그런 분들을 위해 아쉬우나마 트레일러 링크합니다. 저작권 문제로 짧고 사이즈도 작아 죄송합니다.

* WIKIMEDIA COMMONS <이중배상> 트레일러

 

이상, 보험사기를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의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그린 영화 <이중배상>에 대한 포스팅을 가름하겠습니다.

다음에 포스팅 할 영화는 국내에서 지난 4월 개봉했던 <테이크 쉘터 (Take Shelter) >(2011) 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장마와 무더위에 모쪼록 건강 유의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