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5. 19:07
ㅣ전통한지ㅣ
한지는 닥나무 껍질과 닥풀을 삶아서 말리고 두드리고 체에 떠서 말리는 과정까지 무려 99번의 손을 거친답니다. 닥풀의 농도가 낮으면 종이를 뜰 때 물 빠짐이 빨라 두꺼운 한지가 만들어지고, 농도가 높으면 물 빠짐이 느려 얇은 종이가 만들어져요.
한지가 종이로서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므로 총 100번의 손길을 거쳐 한지가 완성된다고 해요. 한지가 주는 은은한 멋과 우수성은 바로 이런 장인정신의 산물일 터인데요, 이정란 방송 작가님이 말하는 '한지'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까요?
새 창호지 바르던 날 |
유년 시절 한옥에서 살았던 저는 문살의 창호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정갈함이 가득한 하얀 종이, 한쪽 귀퉁이에 엇갈려 붙여 놓은 분홍빛 코스모스 두 장까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였죠.
매년 추석이 다가올 즈음이면 우리 집은 헌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 창호지를 바르는 연례행사를 치렀어요. 그날이 되면 할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온 집 안의 방 문을 떼어다가 마당에 눕혀 놓으셨죠. 창호지에 맺히는 아침 이슬이 천연 분무기 역할을 한 것이다.
창호지에 물기가 어느 정도 스며들면 우리 사 남매는 고사리 손으로 창호지를 찢어댔습니다. 북북~ 박박~ 누렇 게 변색된 낡은 창호지가 하나둘씩 찢겨 나가는 소리가 꽤나 경쾌했습니다. 평소에는 찢어질까 봐 함부로 만지지 못 했던 창호지를 그날만큼 은 마음껏 찢을 수 있었죠.
문살에 착 달라붙은 창호지는 할머니가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뜯어내셨습니다. 헌 창호지가 다 제거되면 새창호지 를 풀에 발라 문살에 붙였어요. 이때 미리 준비해 놓은 코스모스 두 장을 창 호지 사이에 붙이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일. 새하얀 창호지로 갈아입은 문들이 제 위치로 돌아가면 온 집 안이 훤해졌고, 이로써 추석맞이 집 단장은 마무리되었죠.
한지로 도배해 볼까? |
"유행을 타지 않고 은은한 멋이 느껴지는데다 이렇듯 늘 자연을 곁에 두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고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때만 해도 한지와 삶은 떼려야 뗄 수 없었습니다. 아니, 한지와 함께 한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한지 장판지에서 태어나 한지 벽지로 둘러싸인 방에서 생활하고, 한지 서책으로 공부하며 한지 수의를 입고 죽음을 맞이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혼하여 양옥에 살다 보니, 또 주변 환경이 점점 양지 위주의 삶으로 바뀌다 보니 한지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쉬워하고만 있다가 문득 '도배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이사를 앞두고 있어 주저 없이 한지를 택했죠.
한지는 그 어떤 유해물도, 한 치의 화학약품도 첨가하지 않고 오로지 자연의 재료로만 만드니 진정한 친환경 벽지가 아니던가요? 방온과 방풍 효과가 뛰어나 날씨가 건조할 때는 한지가 수분을 내뿜고 습할 때는 수분을 흡수하면서 자동으로 습도 조절까지 해주니 그 어떤 벽지가 이만할까요? 냄새 제거 기능 또한 탁월하여 주방과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현대식 가옥 구조에도 제격입니다.
인터넷으로 한지를 검색해 보니 초등학생 딸이 좋아하는 분홍색 한지는 물론 한지 속에 나뭇잎과 꽃잎이 들어있는 것까지 종류가 참 다양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도배를 하고 부푼 마음으로 첫날밤을 보냈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마주한 한지 벽지에 얼마나 마음이 평안해지던지. 도배지에서 진짜 풀잎이 떨어졌을 때는 얼마나 감탄했는지 몰라요. 유행을 타지 않고 은은한 멋이 느껴지는데다 이렇듯 늘 자연을 곁에 두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고 뿌듯하기까지 했죠.
은은한 멋과 매력 |
한지로 도배를 하고 나니 이젠 실생활에서도 한지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늘 마음에 걸렸던 유리로 된 거실장이 마침 눈에 띄었는데, 장난감을 담아 놓아 아무리 정리해도 늘 지저분해 보이던 곳이었죠.
대티 잎이 들어간 파란색 한지를 유리에 붙이니 금 세 깔끔하고 세련된 거실장으로 변신했습니다. 덕분에 가구와 벽지가 온통 하얀 실내에 포인트가 되어 주었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인테리어 효과를 본 셈이에요.
한지 한 장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해요. 한 사무실의 세미나실 유리 벽면에 한지가 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한지를 반달 모양으로 잘라서 웃는 얼굴을 그려 놓았는데 자칫 무겁고 긴장될 수 있는 분위기가 이 한 장의 한지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센스가 참 반가웠죠.
최근에 저는 딸 덕에 ‘한지 등’의 매력에 빠져 지내고 있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이 학교에서 만들어 왔는데, 동그란 등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글씨와 함께 하트를 그려 넣고 색종이로 나비를 오려 붙였어요.
정성도 정성이지만 그 은은한 한지 등이 저는 참 마음에 들었어요. 등 위에 달린 작은 고리를 거실 등 아래 걸어 놓으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죠. 분위 기를 내고 싶은 밤이면 이 한지 등을 켜고 근사한 음악을 틀어놓아요. 그러면 평범했던 거실이 어느새 낭만적인 카페로 변신한답니다.
고작 얇은 종잇장 하나일 뿐이지만 한지가 전해주는 느낌과 그 다양한 쓰임새는 감히 양지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한지에 기름을 발라 비옷이나 우산을 만들어 사용하고, 아교를 두껍게 발라 갑옷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어요. 겨울옷에는 한지를 솜 대신 넣기도 했고, 스카프나 옷을 만들어 애용하기도 했죠.
지금은 다양한 옷감이 개발되어 등한시되고 있지만 저는 수의만큼은 꼭 한지를 고집하고 싶어요. 한지는 닥나무의 섬유질 때문에 단단하고 질긴데다 부드럽기까지 해 수의로도 적합하다고 해요.
자연의 재료로 만들었으니 흙과 함께 어우러져 100%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적어도 수의로 인해 이 땅을 오염시킬 일이 없으니 저세상 가는 길마저도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수의를 미리 준비하면 건강하게 오랜 산다고 하는데 이참에 한지 수의 만드는 법을 배워 보고 싶어요. 100세 시대에 인생의 5분의 2를 향해 가고 있으니 차근차근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94세이신 할머니 것부터 준비하여 부모님 것과 내 것, 남편의 수의까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만들다 보면 지금 생에 더 감사하며 살 뿐 아니라 행복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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