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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베트남 해외자원봉사, 희망과 사랑을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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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8. 13:36

ㅣ해외봉사ㅣ

 

교보생명은 2011년부터 베트남 번째 성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인 올해에는 지난 10월 21일부터 10월 25일까지 4박 5일간, 총 25명의 교보생명 FP 및 직원들이 봉사자로 참여했는데요.

 

 

준 것 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았던 베트남에서의 소중한 시간과 소중한 경험. 가.꿈.사 가족분들과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볼게요.

   

  제 1일 차 : 호치민에 도착, 번째 성으로 이동

 

그간 업무차 해외출장은 몇 번 가봤지만 해외 빈곤지역으로 자원봉사를 위해 출장을 가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출발하는 첫날,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부터 설렘이 가득했는데요.

“여행은 떠남이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했어도 미지의 세계를 만나야 하는 떠남이다. 여행은 돌아옴이다. 아무리 멀리 떠났어도 다시 익숙한 것들로의 돌아옴이다. 다만 돌아올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지, 떠나기 전 지금부터 궁금하다.”

이번 자원봉사를 통해 무엇을 경험하고 배우게 될지 저 자신도 궁금해하면서 끄적여보았습니다.

오전 8시 2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5시간여 후, 현지 시각 오전 11시 40분에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담한 호치민 공항과 고온의 습한 열대 기후가 우리를 맞아 주었답니다.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서 바라본 거리 풍경입니다. 낮고 청명한 하늘과 열대의 나무들이 이국적 정취를 더했습니다.

 

 

베트남에서의 첫 식사는 당연히 쌀국수였습니다. 오리지널 베트남 쌀국수는 한국에서 먹던 쌀국수와는 비교되지 않게 맛있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숙주를 많이 넣고 고수를 조금 넣는데, 베트남에서는 반대로 고수를 잔뜩 넣고 숙주를 조금 넣어 먹는다고 하네요. 

쌀국수를 먹고 곧바로 번째 성으로 출발했습니다. 번째 성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만들어져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2시간 정도 단축되었답니다. 

 

 

아시아 저개발국가 도시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해 보였는데요. 이곳 역시 자동차 매연, 오토바이 행렬, 식민지 지배의 흔적을 담은 영어식 간판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역동성과 활력이 느껴졌습니다.  

도심을 벗어날수록 점점 아시아의 슬픈 현실을 맞닿게 되었습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집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습니다.  

두 시간쯤 지나 오후 4시쯤 드디어 우리가 앞으로 3일간 묵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더운 날씨에 지쳐 땀에 뒤범벅된 상태였는데요. 무더운 날씨에 살풍경한 광경만 봐선지 이곳이 천국 같이 느껴졌습니다.

짐을 풀고 난 후, 내일부터의 자원봉사 활동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습니다. 베트남과 번째 성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듣고, 총 25명의 인원을 4개 조로 나누고, 조장도 뽑았습니다. 내일 오후에 있을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과 필요한 준비물을 만들었습니다.  

11시 반이 돼서야, 그렇게 베트남에서의 첫날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 하루는 아침 비행기 시간에 맞추느라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고, 여기에 베트남과의 시차 2시간이 더해져 무척 긴 하루였습니다. 부산이나 대구 등 지방에서 오신 분들은 밤 12시쯤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셨다니 무려 24시간이 넘는 강행군이었답니다.  

 

  제 2일차 : 빈칸둥 초등학교에서 페인트 칠하기와 미니 운동회 

 

6시 반에 일어나 간단한 조식 후 7시 30분 빈칸둥 초등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학교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여 버스로 40분쯤 간 뒤, 오토바이를 개조한 차량으로 숲길을 달려 다시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곳이었는데요. 버스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가 즐비한 메콩 강 전경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멋진 광경을 선사합니다.  

오토바이 개조차량을 타고 밀림을 달릴 때에는 다소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스릴 만점에 시원한 바람 덕분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얼마를 더 가서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너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아침, 오전 9시부터 학교 페인트칠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조는 교실 페인트칠하는 것을 배정받았는데요. 학교 외벽을 칠하는 조는 이 더위에 땡볕 아래에서 일해야 하는 수고를...

 

 

예쁘게 새로 단장한 학교를 보고 기뻐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무더위에도 열심히 일한 결과, 페인트칠을 거의 마친 학교 모습이 신기루처럼 신비롭게 보였답니다.

깔끔한 옅은 녹색으로 새롭게 페인트칠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서로 말은 안 통했지만 신기하게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답니다.

 

 

 

점심식사는 인근에 있는 학교 선생님 집에서 하였습니다. 안주인이 손이 큰지 모든 음식이 푸짐하였습니다. 안남미로 지은 밥, 강에서 잡은 생선, 달달한 새우 볶음, 돼지고기 찜, 알이 굵은 자몽, 여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 김, 깻잎까지 정겹고 맛있는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오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미니 운동회를 했는데요. 아이들과 과자를 나눠 먹고, 왕관 만들기 놀이를 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아이들 개개인의 사진을 찍어 작은 액자에 넣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열대의 무더위 속, 줄다리기, 2인3각, 응원전까지 운동회를 하느라 체력소모는 심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만든 왕관을 쓰고 새 단장한 학교 앞에서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의 투명한 웃음소리에 우리의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 3일 차 :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뿌듯했던 '사랑의 집 짓기'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조식 후 집을 지으러 출발하였습니다. 오전 9시부터 인원을 2개 조로 나누어 조별로 한 채씩 두 채의 집 짓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조와는 다른 곳에서 집 짓기를 하는 봉사자들입니다. 이 황량한 공간에 아담한 벽돌집이 만들어질 것이랍니다.

 

 

베트남 현지 노동자들의 지도 아래, 우리는 시멘트를 만들고, 벽돌을 나른 뒤, 벽돌에 시멘트를 발라 한 칸 한 칸 쌓아갔습니다. 단순한 공정이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아프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힘들었던 어제의 페인트칠도 오늘의 집 짓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답니다.

 

 

그럼에도 서툰 솜씨지만 더 열심히 했는데요. 출입문과 창문을 내고 내부 벽을 만드니 우리가 쌓은 벽돌들이 차츰 집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곳 바로 옆에는 앞으로 거주하게 될 가족이 사는 낡은 집이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어린 딸, 5개월 된 갓난아기까지 모두 5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집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방바닥이 축축한 흙바닥 이었습니다. 갓난아기가 저런 곳을 기어 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일하고 싶었졌답니다. 그들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윤택해졌으면 좋겠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4시 반 현판식과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마을의 관리와 이웃들이 와서 축하해주셨답니다. 집 사용증을 받는 가장의 눈가에는 잠시 눈물이 비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 전달식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마을 주민 분들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불러드렸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강물이 불어난다 하여 서둘러 마을을 나왔지만 이미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땀 범벅에 먼지 투성이었지만 우리는 씻지도 못한 채 곧바로 저녁식사를 하여야 했습니다.  “힘.들.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오늘의 일정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제 4일 차: 번째 종묘센터 방문 후 다시 호치민으로!  

 

오늘은 번째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른 아침, 서둘러 교보생명이 지원하고 있는 종묘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이날은 열다섯 가정에 야자수 10그루와 자몽 40그루의 종묘를 나눠주고, 앞으로도 총 600가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야자수는 3~4년 후면, 자몽은 1년 후면 수확할 수 있어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해요. 단순히 1 회성 선심 지원이 아니라 자립 기반을 만들어 주는 사업이라 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았답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농장과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베트남의 안남미가 자라는 논입니다.

간단한 점심식사 후 호치민으로 출발하여 오후 3시쯤 도착하였습니다. 가난한 번째 성과 달리 호치민은 불야성 같았는데요. 우리는 오전과 오후라는 반나절의 시차 사이, 베트남의 극과 극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호치민에는 전 세계의 명품이 즐비하였고, 이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빵집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호치민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번영이 번째를 비롯한 베트남의 모든 오지 마을에도 확산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저녁에는 평가회를 가졌는데요. 다들 많은 것을 느꼈는지 피곤한 가운데 열띤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번째의 가난과 낙후된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여기에 우리의 작은 사랑의 손길이 더해져 언젠가는 번째가 풍요롭고 윤택하게 발전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평가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뒤 느낀 점을 서로 나누고 롤링페이퍼를 쓰며 서로의 수고를 격려했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페인트칠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우리가 만든 집 두 채에서 두 가족이 소중한 꿈을 이어갈 것을 생각하니 우리의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현실을 이기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제 5일 차 : 전쟁기념관 방문 후 다시 서울로~ 굿바이 베트남 

  

 

공항으로 가기 전 이른 아침,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전쟁기념관 가는 길, 차창에서 바라본 호치민 시내는 아름다웠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은 작은 유럽을 연상케 합니다.

말로만 듣던 “베트남 전쟁”을 각종 사진과 기록물, 모형 등을 통해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엽제 피해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이 아무 죄 없이 기형으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기념관에 와 보니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어떤 명분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한반도의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베트남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전쟁기념관 관람을 왔나 봅니다. 밝고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베트남의 희망찬 미래를 봅니다. 베트남 어린이들이 그린 “평화의 그림”처럼 온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베트남에서 마지막으로 쌀국수를 먹고 우리는 호치민 공항에서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베트남에서의 4박 5일을 돌이켜 봤습니다. 우리는 떠나기 전과 똑같은 우리였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떠나기 전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떠나기 전에는 없던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요.

우선, 우리의 작은 손길이 모여 베트남 아이들의 꿈이 되었고, 어느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뿌듯함' 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 흔히 자원봉사를 한 뒤 다들 “내가 준 것 보다 받은 것이 더 많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평소에는 그런 말들이 식상하게 들렸는데, 결국 저 역시 똑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베트남 자원봉사를 통해 오히려 많은 것을 받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앞으로도 계속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려는 마음'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무엇보다 기쁜 것은 베트남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고자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작은 사랑과 나눔을 전했다는 사실 같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2시간 시차 때문에 이미 깜깜한 저녁이었습니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 가방에서 가을옷을 꺼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4박 5일간 베트남에서의 추억을 마음속에 담은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메콩 강가를 따라 즐비한 야자수가 눈에 선합니다. 당시에는 더운 날씨와 불결한 환경이 싫어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벌써 또다시 가고 싶어지네요. 소박하고 정겨웠던 번째의 학교와 마을, 그곳에서 만난 친절한 베트남 사람들, 함께 땀 흘리며 열정적으로 일했던 25명의 봉사자들은 제 마음 속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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