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6. 17:26
대학 시절, 필자의 패션은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웠어요. 뱅헤어의 단발머리에 뉴스보이캡, 일명 도리구찌를 쓰고 꼭 끼는 턱시도 재킷에 변형된 남자 한복 바지, 모카신을 신고 다녔다. 벙거지 모자에 미니스커트, 기다란 머플러와 숄을 휘날리고 다니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겐 어떻게 보이는지 몰랐지만, 저는 제 자신의 스타일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니 모든 사람이 똑같은 머플러를 하고 다녔어요. 여대생의 하프 코트 위에도, 교수님의 모직 코트 위에도, 시장 아줌마의 파카 위에도, 회사원의 수트 위에도 재질과 체크의 간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베이지색 체크무늬 머플러가 둘러져 있었죠.
당시에 저는 왜 사람들이 별로 예쁘지도 않은 체크무늬 머플러를 교복 카라를 달 듯 목에 두르고 다닐까 조금 궁금했어요. 그게 짝퉁과 명품이 뒤섞인 90년 대 초 버버리 머플러의 키치한 풍경인 줄은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즈음엔 필자도 이 베이식한 명품 아이템을 길이별·색깔별로 몇 개쯤 옷장에 걸어 놓고 있었던 것이죠.
솔직히 말하면 최초의 버버리 머플러는 제 자발적인 취향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기다란 숄을 휘날리고 다닐 만큼 젊지도 않고, 내 삶이 독창적일 거라는 자신감도 마모되어갈 즈음, 버버리는 어느새 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취향이 되어 있었어요.
‘버버리’라는 취향의 선택이 곧 유서 깊은 신사 숙녀의 무드로 커뮤니케이션되었으므로. 그 뒤로 한동안 저는 명품 셀린 원피스를 입고 펜디 백을 들었어요. 명품은 일종의 가면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어머! 이영애 스타일의 셀린 원피스를 입었군요.”, “어머! 그 블루 컬러의 펜디백 어디서 샀어요?”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나라는 고유명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미적 취향과 사회적 취향 사이에 조화로운 변별력을 갖게 된 건, 필자가 최고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였어요. 자신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고유한 브랜드로 인지하기 시작하자, 명품에 기댈 일도 주눅들 일도 줄어들었던 것이죠.
오래 쓸 수 있는 명품 가방과 선글라스도 옷 장 안에 차곡차곡 갖추게 되었고, 짝퉁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채로 내 취향에 맞는 동대문표 의상들도 기분 좋게 쇼핑했어요. 하지만 제 소비 의지와는 달리 명품과 짝퉁 사이에서 종종 혼란스러운 일에 맞닥트린 경우도 있었어요. 이태원에 가면 유통과정에서 틈새로 샌 고가의 명품들이 라벨만 뜯긴 채로 저렴하게 판매돼요. 가윗날로 라벨이 날카롭게 도려진 끌로에 원피스를 들고 어쩔 줄 모르는 필자에게 친구는 말했어요.
“심각할 거 없어. 그 도려진 라벨만 보면 명품이라고 하기엔 좀 문제가 있지. 하지만 넌 적어도 짝퉁이 아닌 진품을 사는 거야.” 명품이 아닌 진품과 명품이 아닌 짝퉁 사이에서 저는 현기증을 느꼈어요.
짝퉁은 태생적으로 상처를 안고 있어요. 그건 ‘날고뛰어도 명품의 품질보다 못하다’라는 외형적 상처보다 태생 자체가 ‘모방과 거짓말’이라는 실존적 상처인 것이죠.
제가 처음 명품에 의존했을 때 언제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 ‘안전하게 축적된 오리지낼러티’로 잠시라도 제 삶의 불완전함을 감추고 싶었을 때였어요. 자기 삶의 페이크를 위해 한때 명품이 간절하게 필요했다고나 할까요.
10년 전인가, 어머니께 진품의 1/3 가격에 해당하는 정교한 고가의 짝퉁 루이 비통 백을 선물해 드린 적이 있어요. 어머니는 그 백을 딱 한 번만 드셨어요. “음…, 처음엔 정말 맘에 쏙 들었단다. 그런데 다니면서 다른 여자의 백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이 든 건 진짜일까? 혹시 나 같은 가짜일까? 그런데 저 사람은 내가 가짜라는 것을 알까?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라고 음지 속에 시든 식물처럼 말씀하셨어요.
저는 무척 송구스러웠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은 물건과 자신을 동일시해요. 사람의 성격은 곧 물건의 성격으로 구체화되고, 자신이 살아온 날들의 추억과 가치로 물건과 교감을 나누게 되죠. 어머니는 제게 버버리 트렌치코트와 펜디 금장 시계를 물려주셨어요. 그 뒤부터 버버리와 펜디는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와 진정한 명품이 되었답니다.
현대미술가 김수자의 작품 속 보따리를 쥔 유랑객처럼 백팩은 항상 필자와 함께였다. 때로 적진을 향해 수류탄 가방을 메고 뛰어드는 소년병처럼, 인터뷰하는 배우 앞에서도 배낭을 멘 채였어요. “가방 좀 내려놓으세요.”, “아뇨, 가방은 제 몸의 일부예요. 전 이게 편해요. 그냥 가방을 제 등에 업은 아기려니 하세요.”
요즘엔 다섯 살 딸아이가 내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답니다. 왜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뱃속에 작은 가방(자궁)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필자의 몸 속 가방의 지퍼를 열고 나온 딸아이는 이제 살짝 주위를 살핀 후 내 배낭의 지퍼를 열고 볼펜을 꺼내 사건들이 가득한 취재 노트 어딘가에 자신의 필적을 더해요.
유아기야말로 가방을 메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자유의 시간이지만, 뒤뚱뒤뚱 걸음마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가방에 애착을 느끼고, 그것을 만지면서 여성성을 배우고 엄마를 닮고 싶어해요. 어릴 적에 저 또한 엄마의 가방 속이 얼마나 궁금했던가요.
여자의 가방을 뒤흔드는 모순들 중에서 핵심은 가방의 실용적 기능과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과시품 사이의 모순일 거예요. 재기발랄한 모스키노는 호화 핸드백에 목을 매는 패셔니스타들의 천박하고 끝없는 소유욕을 조롱하는 백을 만들기도 했어요.
바닐라 케이크 위로 녹아내리는 초콜릿 형상을 띤 이 백의 이름은 ‘퍼지 더 패셔니스타-케이크나 먹으라고 해(Fudge the fashionistas-Let them eat cake)’이랍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어 굶는다는 백성들에게 한 말을 케이크를 닮은 가방에 빗대는 재치는 가히 현대 미술의 메시지를 닮았어요.
요즘 필자의 가방은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 외출할 때 들고 다니는 빨간 배낭에는 온갖 아이용품들이 가득해요.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돌봄 능력이 더 뛰어난 동물이라는 결정적 증거야말로 가방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매번 제 가방에서 상황을 해결할 족집게 같은 물건이 나오기를 기대해요. 우유·기저귀·손수건과 사자가 튀어나오는 손바닥 책과 흰 토끼 인형과 딸기와 방울토마토와…. 사회학자장 클로드 카프만의 말처럼 여자의 가방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동시에 사랑의 세계랍니다. 사회에서 사랑을 짊어지고 다니는 이들이 바로 ‘여자’이기 때문이에요.
글. 김지수 • ≪조선비즈≫ 대중문화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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