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0. 19:13
|혈액형성격|
"그런데 혹시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언젠가 한 케이블 방송사가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5.9%가 상관관계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2004년 말, 지방의 한 금융회사가 직원을 모집하면서 특정 혈액형의 지원자를 제한하다 물의를 빚은 일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취업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문에는 특정 혈액형의 사람만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과연 혈액형과 성격은 관계가 있을까요?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
혈액형은 1901년 오스트리아의 세균학자 란트슈타이어가 수혈할 때 피가 엉기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짓기 시작한 것은 1927년 일본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철학 강사였던 다케지 후루카와가 「혈액형을 통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혈액형과 성격을 관련시켰는데, 당시 일본의 선정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이력서에는 혈액형을 기재하는 칸이 생겨났고, 2차 대전 중에는 일본 병사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혈액형을 이용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일본의 저널리스트 노미 마사히코가 쓴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혈액형에 대한 관심은 다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혈액형에 따라 몸의 구성물질이 다르며, 이것이 체질을 만들고 성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혈액형 껌과 음료수, 달력이 나오고 혈액형에 따라 원생들을 나눠서 가르치는 방법을 달리하는 유치원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혈액형은 그저 혈액형일 뿐
그러나 혈액형별 성격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혈액형과 성격이 관계가 있다는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설사 맞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우연의 일치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입니다. 즉 혈액형은 그저 혈액형일뿐 사람의 성격과는 관계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혈액형별 성격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넘효과(Barnum effect)’ 때문입니다. 바넘효과는 점성술이나 점괘의 결과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일반적인 것임에도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믿는 현상입니다. 바넘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을 말해줌으로써 앞에 앉은 사람들의 성격을 알아맞추는 공연을 했던 미국의 흥행사입니다. 어떤 점괘를 들으면 그것이 머릿속 기억을 이끌어내는 단서로 작용해서 사람들은 그것과 일치하는 것만을 기억해냅니다. 때문에 혈액형별 성격이 마치 신통술처럼 보이게 됩니다.
범주화,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키는 것
사람들은 복잡한 외부세계를 파악할 때 사물의 공통점을 찾아 몇 개의 그룹으로 무리지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부세계가 단순해집니다. 가령 장롱・탁자・소파・의자・침대 등을 ‘가구’라는 말로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범주화’라고 하는데, 복잡한 환경을 단순화시킴으로써 두뇌의 부담을 덜기 위한 우리 지각체계의 한 특성입니다.
성격 역시 사람마다 달라서 한 사람씩 파악하려면 두뇌에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혈액형으로 묶어 단순화시켜서 파악하려는 것이 혈액형별 성격 분류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지역이나 출신학교, 직업이나 인종 같은 면에서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고정관념’이 되어 우리의 생각을 묶어버리게 되지 않을까요? 사람은 몇 가지 범주로만 분류될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혈액형별 성격 파악하기에 몰두하기보다 한 사람을 진지하게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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