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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길도 여행, 텅 빈 듯한 고요 은빛 바다 홀로 빛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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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22. 16:00

 

전남 완도군의 보길도. 340여 년 전에도, 또 지금도 그 섬의 주인은 고산 윤선도입니다. 당쟁과 사화로, 또 잇따른 전란으로 어지러웠던 세상을 등지고 절해고도로 들어왔던 그는 이 섬에다 꿈에 그리던 이상향을 만들었어요. 겨울의 한가운데에 그 섬으로 가볼까요?

 

완도에서 보길도로 건너가는 길

완도 화흥포에서 뜬 배는 보길도가 아니라 노화도의 북쪽 동천항에 닿습니다. 이 배로 노화도까지 가서 육로로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가야 해요.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에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여객선이 보길도에 직접 닿았는데, 지금은 육지에서 좀 더 가까운 노화도까지만 운항해요. 노화도에서 가장 큰 항구는 이목항, 보길도에서는 청별항이에요. 이 두 항구는 서로 딱 마주보고 있는데 보길대교가 이 두 항구를 잇고 있어요. 보길도의 청별항은 여기서 윤선도가 찾아온 손님을 떠나 보냈다고 해서 ‘맑은(淸) 이별(別)’이란 제법 서정적인 이름을 얻었어요.

노화도에서 보길도로 건너가면 열이면 열, 모두가 윤선도의 자취를 따라 부용동(芙蓉洞)부터 찾아가봅니다. 뒤편의 격자봉을 중심으로 산들이 둘러치고 있는 꽃술 형상의 자리. 그래서 마을 이름도 꽃이름인 ‘부용(芙蓉)’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부용동은 바다 가운데 섬이면서도 바다가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해요. 육지의 거친 유배지를 들락거리던 윤선도는 여기에 이르러 ‘선계(仙界)’라 이르고, 말년에 별장을 짓고 은둔했습니다. 윤선도의 자취 중에서 가장 빼어난 세연정은 부용동 초입에 있어요. 물을 받아 비정형의 연못을 만들어두고 그 가운데 앉힌 정자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풍경을 즐기며 노닐었다고 해요. 모르긴 해도 보길도에서 윤선도가 남긴 <어부사시사>와 서른두 편의 한시도 묵향 그윽한 세연정에서 지어 내려갔을 듯해요. 세연정의 매력이라면 창호문을 모두 접어 활개 치듯 위로 들어 올린 모습이에요. 부용산 아래는 근래에 복원된 낙서재와 곡수당 등이 있고, 맞은편 산자락에는 ‘동천석실’이 있습니다.

 

보길도에서 만난 경주 김씨 고백

보길도는 여전히 ‘윤선도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섬에 윤선도만 있는 건 아니에요. 보길도에는 고암 김양재의 고택 ‘심원위재(深原緯齋)’도 있어요. 지은 지 200년 남짓 된 고택인데 행랑채에 낸 문을 들어서면 ‘행율당(杏律堂)’이란 현판을 내건 사랑채 앞으로 난대림의 초록 정원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마당에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굵은 나한송과 그보다 더 우람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고, 날렵한 석탑 한 기가 서 있어요. 그만그만한 나한송은 여기저기서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굵고 풍성한 나무는 또 처음입니다. 안채의 뒤쪽에도 잘 가꿔진 후원도 있어요. 후원에는 완도 땅에 나뒹굴던 것을 배로 실어와 맞췄다는 고려 때의 부도도 세워져 있어요.

심원위재의 주인 김양재는 300년 전쯤 보길도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제법 큰 부를 일궜던 경주 김씨 일가의 후손이에요. 그는 생전에 간척사업과 임업, 교육사업 등을 펼쳤는데, 세연정 옆의 보길초등학교도 그의 아들인 상근의 손으로 세웠다고 해요. 후손들이 손을 댄 사업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모두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들이었어요. 부를 일궜으되 주민들을 부리거나 착취하지 않고 시간과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 투자하면서 착실하게 부를 쌓았죠. 하지만 보길도에 은거한 윤선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에요. 외딴섬에서나마 낙원을 꿈꿨던, 시대와 불화한 뛰어난 건축가이자 빼어난 문장가로 보는 이들도 있고, 당시 궁벽했던 섬사람들의 고통에는 눈 돌리지 않았던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도 따라붙는답니다.

 

겨울, 보길도에서 반짝이는 것들

겨울 보길도는 온통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일출 무렵이면 예송리 해안의 앞바다는 온통 붉은빛으로 반짝이고, 오후 나절의 망끝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서는 바다가 은박지처럼 반짝여요. 망끝 전망대에서 보는 일몰의 바다가 또 얼마나 붉게 반짝이던지. 통리와 중리해변의 눈부신 은모래 백사장이며 공룡알 해변의 진짜 공룡알만 한 둥근 바위들이 바닷물에 씻겨 반짝이는 모습은 또 어떤가요. 동천석실로 어이지는 숲길에도 동백나무 이파리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어요. 이른 아침의 여명에 보길도 내만의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양식장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섬 사람들의 노동 풍경 또한 눈부셔요. 보길도는 겨울이면 외지사람들이 발을 끊어 텅 비지만, 섬사람들은 외려 겨울이 더 바쁩니다. 보길도 앞바다를 가득 메운 전복 양식장을 관리하고, 전복의 먹이로 줄 다시마를 기르는 양식장을 돌보느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해요. 이런 모습을 가장 감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돛치미 끝이에요. 돛치미란 ‘도끼날’의 방언. 섬의 남쪽 길에 뻗어 나온 곶에 도끼로 자른 듯한 절벽이 바로 그곳입니다. 중리해변의 뒤쪽 구릉을 따라 바다와 섬을 양쪽 옆구리에 끼고 오솔길을 따라 2㎞쯤 가면 길게 뻗어 내린 곶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가 나타나요. 보길도에서 바다의 아름다움만으로 말하자면 돛치미 끝으로 이르는 길과 돛치미 끝에서의 경관을 단연 첫손으로 꼽을 수 있어요.

돛치미 끝에 서면 긴 곶과 그 너머의 작은 섬들 그리고 온통 바다를 가득 메운 전복 양식장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요. 그 사이를 배들이 수면 위로 반짝이는 주름을 만들며 오갑니다. 바위에 앉아 남녘의 나른한 햇볕 속에서 이런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남쪽 저 너머에서 벌써 봄의 기운이 수런대고 있는 듯해요. 하기야 완도를 넘어오면서부터 이미 양지바른 쪽에는 벌써 냉이며 쑥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었어요.

 

 

 

보길도 Tip

 

가는 길

전남 완도의 화흥포항과 땅끝마을에서 보길도행 카페리호가 운항해요. 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해안도로를 타고가면 화흥포항이 나와요. 땅끝선착장은 강진 무위사 나들목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가다 성매 교차로에서 806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길 끝까지 가면 돼요. 화흥포항에서는 대략 1시간에 1대꼴로, 해남 땅끝선착장에서는 30분에 1대 꼴로 노화도까지 페리호가 운항됩니다.

 

묵을 곳

보길도 예송 해변에는 원룸형 펜션 풀하우스(010-4065-7455)나 식당을 겸하고 있는 낙원펜션(061-554-9624) 등을 비롯해 민박과 펜션들이 제법 많아요. 노화도의 이목항 주변에는 시설이 괜찮은 모텔이 두 곳 있어요. 크로바모텔(061-555-5656)은 바다 건너 보길도 청별항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가 빼어나고, 갈꽃섬모텔(061-5538888)은 바다전망은 없지만 시설이 깨끗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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