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9. 16:00
지난 7월 26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 40년 전 신안 앞바다에서 보물선이 하나 발견됐는데, 그때 발굴된 2만여 점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어요. 신안해저선 발굴 40주년 기념으로 열리고 있는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신안 해저선, 모습을 드러내다
1975년 5월 어느 날, 신안에 사는 어부 최 씨는 그날도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습니다. 만선을 바라며 그물을 바다에 내렸고 올라온 그물에는 물고기가 얼마 없었어요. 실망한 최 씨가 다시 그물을 던지려는 찰나 “달그락” 소리가 그물을 살펴보니 뭔가 푸르스름한 항아리가 걸려 있었다고 해요.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항아리를 집에 가져온 최씨는 동생과 함께 항아리를 가지고 신안군청에 찾아갔어요. 감정결과 이 항아리는 대형 꽃병으로 쓰인 청자였습니다. 수백 년간 잠들어있던 신안 해저선은 이렇게 세상에 나타나게 됐습니다.
보물선으로 승선하라!
신안 해저선을 발굴할 때 파도가 너무 거칠어 매우 어려웠다고 해요. 그럼에도 많은 유물을 발견했는데요. 도자기뿐만 아니라 목재로 쓰는 자단목과 동전, 차, 향신료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신안 해저선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단, 배의 아랫부분이 남아있어 추정만 할 수 있는데요. 8개의 선실이 있고, 길이가 34m, 폭이 11m, 높이가 3.7m, 중량이 200톤급으로 추정됩니다. 14세기 최대 무역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어요. 100명도 더 태울 수 있지만, 대략 60명 정도 탔을 것으로 보여요. 중국 푸젠성에서 발견된 배와 크기나 구조 면에서 비슷해 신안 해저선 또한 푸젠성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배는 어디서 어디로 향하는 배였을까요? 배 안에서 물표가 출토돼 이를 통해 배의 출항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해요. 물표는 물건에 붙이는 이름표 같은 거예요. 물표를 보고 알아낸 배의 여정은 중국 닝보항에서 일본 하카타 항으로 가고 있던 배였어요. 당시 항로는 닝보항에 출발해 제주를 지나 하카타로 향하는 직항로를 이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제주도 근처에서 폭풍을 만나 신안까지 밀려와 침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 배에 탔을까요?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라 대부분 중국인과 일본인이 승선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물론, 고려 사람들도 소수는 탔겠죠? 배에 탄 사람들은 승려, 상인, 그리고 상단 주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배 안에서는 어떤 활동들이 있었을까요? 한번 항해를 시작하면 오랫동안 꼼짝 못 하고 배에 갇히게 되죠. 그래서 사람들은 지루함을 달랠 무엇이 필요했습니다.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바둑과 장기, 주사위 놀이 등을 즐겼을 것으로 보여요.
부서진 보살상으로 추측하건대 승려들은 항해가 안전하게 끝나도록 기도를 올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주방기구들도 출몰되었는데요. 배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갖가지 요리도 해 먹었을 거예요.
귀족들은 차를 마시고, 시를 쓰며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배 한 척에서도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고려의 이야기
이 배가 지나온 중국과 일본, 고려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먼저 중국은 그 당시 큰 형 같은 국가였어요.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다 중국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고려와 일본은 모든 선진 문물을 중국을 통해 받아오는 구조였어요.
고려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먼저 중국의 문물을 받아오고, 독자적으로 더 발전시켰죠. 대표적인 그 예가 바로 고려청자예요. 청자를 만드는 기술은 중국 송나라에서 먼저 시작해 고려가 그 기술을 배워왔고 이후 유약을 바르는 기술이나, 음각을 새기는 기술들을 개량해 청자 원조인 중국에서도 고려청자를 인정했어요. 이렇게 고려는 다양한 물건들을 중국에 되팔기도 하고, 일본에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세 국가는 서로 문화를 주고받는 관계였던 거죠.
이 세 국가는 어떤 문화들을 공유했을까요? 먼저 그 당시에 어떤 것이 유행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해저선에서 발견한 유물들은 대부분 고대 청동기를 많이 닮았어요. 옛 청동기를 모방했다 해서 ‘방고동기(仿古銅器)’라고 해요.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세 나라 모두 이러한 복고풍이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향병,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당시 일본에서는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고, 꽃을 가꾸는 문화가 유행했어요. 상급무사나 승려, 귀족들은 ‘가라모노(唐物)’라고 하는 중국제 물건을 대량으로 수입하는데요. 해저선의 유물들이 모두 일본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점이 이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해저선에 잠든 이야기
사실 해저선 유물은 더 일찍 발견됐었다고 해요. 그러나 어부들은 ‘귀신 쓰던 그릇’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바다에 다시 버렸다고 해요. 결국 해저선의 발견을 전국에 알린 도굴 사건이 생겼는데요. 도굴꾼들은 해저선 소식을 듣고 작은 배를 빌려 해저선 유물을 마구잡이로 건져냈습니다. 그리고 유물들을 전국 각지에 팔아 치웠죠. 1976년 당시에 200만원에서 300만원을 받고 팔았다고 해요. 당시에는 라면 한 봉지에 20원, 자장면이 100원이던 시대였으니 요즘 물가로 환산하면 8백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에요. 최초의 도굴 사건부터 10년간 대략 300여 명의 도굴꾼이 잡혔다고 해요.
<신안해저에서 찾아낸 것들>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간 : 2016.7.26(화)~2016.9.4(일)
요금 : 성인 5,000원 / 청소년(만13∼18세 이하) 4,500원 / 어린이(만6∼12세 이하) 4,000원
신안 해저선에는 현재 유물들이 남아 있지만 당시 함께 가라앉았을 선원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어요. 가족의 생계가 달렸을 일이었고, 각자의 꿈을 담은 항해였을 텐데 그 모든 것이 바다 속으로 가라 앉고 말았죠. 도굴로 인해 그들의 꿈과 소망이 잊혀져 간 것은 아닌지 이 보물선을 보면서 생각해볼 일입니다. 지금까지 가꿈사 프론티어 9기 임병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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