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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거슬러 올라온다 섬진강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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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23. 16:04

봄은 저 멀리서부터 바다를 타고 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하지만 다시 쏴아, 하고 물러가버리기도 하죠. 몇 달째 봄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밀당’처럼 보이는 광경이지만, 그렇다 해서 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낮은 자세로, 바다와 맞닿은 강을 타고 슬금슬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섬으로부터의 봄 편지

남해도(島). 섬에 바다 이름을 붙인 건 그 바다와 가장 닮은 곳이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남해를 만날 때마다 하게 돼요. 어쩌면 남해의 여러 곳 중 가장 먼저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특히 물건리에 조성된 방조어 부림(防潮魚付林)은 그 최전방에 위치해 있는데요. 폭 30m의 오솔길이 1.5km에 이르도록 이어진 이곳의 기원은 약 370년 전, 전주 이씨 후손들이 정착하며 나무를 심은 데서 출발해요. 나무는 여러 목적으로 심어졌어요. 바람을 막고, 파도와 해일을 막는가 하면 숲이 만들어내는 그늘에 물고기들을 유인하는 역할까지 해냅니다. 해서 방조어부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 하지만 그 기능만으로 이곳을 설명하는 건 너무 무미건조한 설명이에요. ‘천연기념물 150호’라는 훈장이 그저 기능성에만 주목했기 때문만은 아니겠죠. 이곳의 길은 나무 데크로 깔려 있는데, 그 위를 걸으며 가까이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듣는 일은 이 계절에 꼭 한 번은 해 봐야 할 일이기도 해요. 게다가 그토록 목말라 했던 푸른 기운이 잔뜩 모여 있으니 겨우내 갈급하던 새로운 무언가, 살아 있는 무언가에 대한 욕구는 이곳에서 모두 해소할 수 있을 정도.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봄을 확인하는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남해로 흘러든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오르는 여정은 이제 시작이에요.

 

섬진강 하류의 대표적인 도시는 광양과 하동. 그 중 광양에 처음 매화나무가 식재된 것은 1931년. 일본으로부터 만 그루의 밤나무와 함께 다섯 그루의 매화나무를 들여온 김오천 선생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됐어요. 그러던 것이 이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특산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매실청, 매실 장아찌는 물론 매실로 만든 각종 장류는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이 몰리게 하는 일등공신. 특히, 김오천 선생의 며느리인 홍쌍리 여사가 운영하는 청매실농장의 주차장 위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줄기는 청량감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원합니다. 물론 농장에서 운영하는 매점의 매실 아이스크림도 시원하고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에 한창인 매화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강바람은 더더욱 시원합니다. 무엇보다, 그 검은 나무에서 갓 튀겨낸 팝콘처럼 하얗게 부풀어 오른 매화의 모습이 시원해요. 겨울 눈이 주는 차가운 하얀색이 아니라, 봄꽃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노르스름하면서도 연분홍빛이 살짝 도는 따뜻한 하얀색이 시원하면서도 따뜻한 형용모순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어쩌면 모두 섬진강 덕분일지도 모르겠어요. 섬진강.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에서 발원해 전라남북도를 모두 휘감고 지리산을 돌아 나와 전남과 경남을 가르는, 지나치게 넓지도 않고 개울처럼 협소하지도 않은 물줄기. 흘러내리는 이력만으로도 남도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강. 천천히 굽이치다 모래톱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구름 가듯 무심히 흘러가는 그런 곳. 그런 섬진강이기에 이곳의 봄은 어느 곳보다 포근한 게 아닐까요. 곧 매화로 뒤덮일 언덕에 서서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시간이야 어떻게 흐르든 알 바 아니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광양에서만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바람보다 먼저 물 위를 달리고 빗방울보다 먼저 땅에 스미는 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보폭으로 앞서가고 있으니 늦지 않게 그 흔적을 쫓아야 해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場)인 화개장터도 좋고, 한반도 최초의 녹차 재배지도 좋고, 노을이 아름답다는 하동포구도 좋지만 박경리 선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토지』의 촬영장을 빼놓을 수는 없죠. 물론 한반도 이곳저곳에 산재한 드라마 촬영장을 둘러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경험을 갖고 있는 이도 적지 않을 겁니다. 조악한 구성도 그러하거니와 그나마도 관리가 제대로 되질 않아 그야말로 폐허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곳도 한두 곳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모습과 분위기는 하동에서 일부러 찾으려 해도 보기가 힘들어요. 특히 드라마의 주 무대였던 최참판 댁에 들어서면 근래에 지어진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분 좋은 시간의 더께가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절로 이는 호기심을 억누르며 조심조심 안채와 사랑채, 별채를 넘나들다 보면 어느 틈엔가 소설 속에서,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 울고 웃던 주인공들과 함께 호흡을 하는 것 같아 괜히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됩니다. 특히 뒤란으로 난 대나무 숲 사이의 짧은 오솔길을 걷고 있노라면 저 멀리 아련하게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여 잠시 걸음을 멈추게 돼요.

그 환영을 떨쳐내기 위해 도리질을 하다 다시 앞마당으로 방향을 잡고 대문을 나서면 보기 좋은 높이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평사리 들판이 금세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줍니다. 그곳엔 벌써 봄의 푸른 발자국이 잔뜩 찍혀 있답니다. 

 


남도, 봄의 땅에 서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봄의 흔적을 밟아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 종주를 꿈꾸는 대한민국 산사나이들의 요람이라 불리는 구례에 도착하게 됩니다. 물론 그곳이 능수능란하게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만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남녀 노소 누구나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봄마중을 하는 곳이 바로 구례이기도 합니다. 세상 어떤 노랑보다 더 신선한 노란색을 자랑 하는 산수유가 지천으로 흐드러지는 곳이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보니 도로 곳곳에서는 산수유 마을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어요. 이정표 대신 많은 차들이 향하는 곳을 그저 따라가도 되고요. 산수유는 개나리보다 더 밝고 진한 노란색꽃을 피우는데, 꽃 잎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그 모습 역시 봄처럼 화려합니다.

 

그러니 그런 꽃을 보러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 그 인파 속에 스며들어 꽃그늘 속으로 잦아드는 기분 역시, 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니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겨두세요. 만약 좀 더 차분한 곳을 찾는다면 화엄사에 가보세요. 화엄사는 지금으로부터 1465년 전인 544년, 연기 조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전라권에서는 선암사, 선운사, 송광사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명찰이기도 합니다. 특히 각황전을 비롯한 4점의 국보와 7점의 보물은 약 1500년을 이어온 영롱한 역사를 더욱 밝게 빛내주는 주역들. 뿐만 아니라,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구례에 들른다면 반드시 한 번은 방문해보도록 해보세요. 돌아 나오는 길, 아직 따뜻하지만은 않은 바람에 몸이 굳어버렸다면, 참게탕을 추천합니다. 섬진강에서 잡힌 것들로 양식을 해 끓여낸 이 시기의 참게탕은 각별한 데가 있어요.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에 절로 한숨이 나올 때즈음이면 시선은 벌써 저 멀리 섬진강을 향하게 됩니다. 깊은 감칠맛에 이미 입 안에서는 꽃이 핀 듯하니 섬진강 따라 꽃이 흐드러지는 날도 머지 않았음을 예감하는 거죠. 지금이 바로 봄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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