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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포켓 소주와 초코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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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2. 09:30

“삑, 삑 2750원입니다. 봉투 가격 20원 추가되는데 필요하세요?”

“필요 없습니다.”

“5000원 받았습니다 거스름돈 2250원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울리지 않게 원리원칙을 지키는 내가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손님이었다. 항상 12시가 되면 하루 일과처럼 편의점에 들어와 경주라도 하듯 포켓 소주와 초코볼 하나를 집어 들어 계산하고는 말릴 틈도 없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는, 조금 이상한 손님이었다. 군청색 항공 점퍼에 빵모자를 쓴 노인은 옆 회사 건물에서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근로자였다.


    하지만 나에게 그가 누구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편의점 안에서 소주를 마시냐는 것이다. 편의점 내에서는 원래 음주가 불가능하다. 내가 그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사실에 있다. 내가 말리려고만 하면 남자는 구석에서 몰래 쫓기듯이 술을 들이켜는 바람에 언제나 그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어느 날은 기필코 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굳은 다짐을 하고 그의 뒤에 섰었다. 남자는 초코볼을 알약 삼듯 씹다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주를 한껏 들이켜고 있었고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소주를 들고 있는 손의 반대 손으로 그의 얼굴을 스스로 쓸어내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어깨가 못내 힘겨워 보였는지 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수 밖에 없었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남자는 내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허둥지둥하며 소주 페트를 버리고서 “미안합니다, 미안해요”를 연신 반복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어디 그런 관용을 베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마워요 학생, 하며 돌아갔고, 그 이후로도 매일 들러서 소주와 초코볼을 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할아버지와 나는 꽤 친해져서 할아버지가 포켓 소주를 비우는 잠깐의 시간 동안에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할아버지에게도 나 같은 막내가 있었고, 담배 피우는 걸 싫어했던 막내를 위해 금연에 성공했는데 이젠 떨어져 산다며 슬퍼했다. 같이 일하던 친구가 아파서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하고 있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는데, 할아버지에게 그 친구는 하나뿐인 동료라는 걸 알고 난 뒤로는 그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에게 문득 진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그 두 개예요? 하나는 쓰고 하나는 달고….”


    “예전엔 담배가 타고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이제는 너무 허전해서, 추운 겨울에 일하다 보면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데 그러면 이거, 이거 딱 크기도 적당하잖아 취하지도 않고 손에도 딱 들어가고. 이거 한입 마시고~ 쓰기만 하면 심심하니까 요고 달달한 거 한입. 그러면 세상 무엇도 필요가 없어. 몸이 훈훈해지면서 다시 일 할 힘이 생겨.”


“할아버지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거네요.”


특유의 그 구수한 말투로 덤덤하게 말하며 사람들에겐 그런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고 웃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때 옆 건물 회사 직원들이 휘몰아치듯 들어왔다. 당황한 할아버지는 그들을 피해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갔고 회사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그를 아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그를 안다고 했다면 할아버지가 계속 올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겁이 바짝 들어 비겁하게도 난 그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난 다음 그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그 뒤로 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음주 상태로 근무를 하여 일을 쉬고 계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일을 그만두게 된 것, 소박했던 그 2750원어치의 휴식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모두 나 때문인 것 같아서 항상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며 서 계시던 쪽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만약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온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우린 꽤 좋은 친구였는데 끝까지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비겁해서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것, 할아버지와 처음 마주친 날 그때 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할아버지에게 그 충전이라는 것은 그저 지친 육신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어쩌면 지나치게 인정을 구하기 힘든 세상에서 손에 딱 들어오는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더 먼저인지를 깨닫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나 또한 학교를 쉬고 제대로 뭐 하나 이룬 것 없는 상황에서 인정받기만을 원했고, 누군가 봐주기만을 바랐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쉬지 않고 움직였고 가다가 원하는 것이 없으면 절망했다. 나는 그 허무함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눈동자는 비어가기만 했다. 사회에 나가기 위해 공장에 찍어내는 기성품처럼 내 상품성을 다듬으려고만 했지, 내 안의 영혼을 채우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마다 나는 그럴 때가 아니라고 냉정히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런 ‘때’라는 것은 없다. 그런 말은 우릴 조급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것일 뿐이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할아버지 말대로 우리 모두 위로 받는 그런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면, 난 아직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부터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세상에 나아가 비록 눈물을 흘리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소중한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 숨기지 않고 용기 내어 그들에게 그가 내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본 게시물은 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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