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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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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2. 10:30

    노 교수와의 수업은 점심때도 한참 지난 늦은 오후였다. 수업이 끝마칠 즈음이면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 붉은빛을 더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는 단내 섞인 바람이 이런저런 말소리와 함께 불어 왔다. 지는 해가 드리우던 4층 강의실에서는 옅은 여름 냄새가 났다. 어른의 경계에 서 있던 우리는 처음 맞는 대학에서의 방학에 들떠 있었다. 강단에 선 노 교수는 그가 평생을 몸담은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 교수의 수업은 치열한 수강 신청에서도 혼자서만 모두에게 뒷전이었다. 그의 수업에서는 고전 프랑스 문학을 배웠다. 막 대학에 들어온 우리에게는 고리타분한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과제가 많고 성적 기준이 까다롭다며 불어불문과 전공생조차 그의 수업을 꺼렸다. 나는 막 더듬더듬 혀를 굴리며 불어 인사말을 배우던 불문과 새내기였다. 언젠가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원어로 읽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과제든 시험이든 거뜬하게 해내 보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월요일 늦은 오후 시간이 비었고, 마침 학점을 채우기 위한 수업 하나가 모자랐다.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의 연속이었던, 노 교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갓 입학한 새내기인 것이 무색한 수업이었다. 우리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프랑스 문학을 일주일에 한 권씩 독파해 나가야 했다. 인상적인 문단을 발췌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주석으로 남기고, 작품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담아 매주 리포트를 제출했다. 첫 수업에서 20명이 조금 안 되던 수강생은 점점 줄어 10명 남짓이 되었다. 노 교수는 그저 수업의 방향만 툭 던져 줄 뿐, 이렇다 할 강의는 없었다. 일주일 내내 매달린 책 한 권을 들고서 다다른 강의실에서는 모두가 돌아가며 발표를 했다. 쭈뼛쭈뼛 강단으로 올라가 발췌한 문단을 낭독하고,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과 스친 생각을 어렵게 내뱉었다. 발표 전 차례에는 항상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가늠조차 안 되는 몇 백 년 전 사람이 남긴 문장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들을 갈무리했다. 주어진 일주일 내내 고민하고 나름 치열하게 찾아낸 답을 또다시 고르고 골라 말했다. 그러면 노 교수는 우연히 마주칠 만도 못 한 남 이야기를 듣듯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가끔은 옅은 미소를 띠거나, 펜으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나는 그런 노 교수의 반응에 생긴 오기로 배는 더 잘 해내겠다며 머리를 굴렸다. 열심히 한 만큼 그가 애정이 어린 칭찬을 해주길 바랐던 투정이었다. 그런데도 그를 싫어할 수 없던 이유는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어렵게 발표를 끝마치고 노 교수를 슬쩍 쳐다보면, 그의 은색 안경테 아래에 반짝이는 눈이 있었다. 정년 퇴임을 앞둔 노 교수가 여전히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게 좋았다. 그와의 수업을 거듭할 수록 그의 눈빛도 더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 즈음에는 그가 별말을 안 해도 그 눈에서 칭찬 비슷한 무언가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한 학기가 금세 흘렀다.


    마지막까지도 노 교수는 말이 없었다. 모든 수업이 끝나자, 그의 퇴임식이 열렸다. 늘 그렇듯 노을이 잘 드는 4층 강의실에서였다. 그의 고별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 강의실 뒤편에도 가득했다. 그의 강의실이 처음으로 북적였다. 나는 우연히도 그 평생의 마지막 학생이었고, 그 이유만으로 퇴임식에 참석하기 충분했다. 노 교수의 목소리를 오래 앉아 들으니 온통 생경한 느낌이었다. 긴장한 듯 떨리는 음색도 낯설었다. 노 교수는 그의 마지막 강의를 앙드레 지드의 말로 시작했다.


    “ ‘나타니엘이여,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던져 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 나는 이 책이 그대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기를 바라고 있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던 여러분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정답이 없는 문학과 길이 없는 인생을 가르치며 여러분이 그저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를 바라 무심한 스승이 된 것을 용서하십시오.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제가 아직도 일말의 반짝임을 간직할 수 있던 이유는, 제가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어오는 모든 것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삶의 모든 가르침을 그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성인이라 불리는 다른 이의 책등을 어루만지기보다는, 그 책을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스스로 빛나고 있음을 잊지 마시길.”


    마지막 강의를 마치며 교수는 눈이 휘게 웃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찰나였다. 내가 살아온 만큼 살아갈 노 교수와 그가 살아온 만큼 살아갈 나의 순간이 맞닿았다. 그제야 비로소 그와의 수업에서 남은 것들이 모양을 드러냈다. 17세기 어떤 철학자의 글을 치기 어리게 비판하고, 19세기 어떤 작가의 글에 얼굴이 붉어지던, 차갑고 뜨겁던 내 모습이 마음 언저리에 둥둥 떠다녔다. 노 교수의 눈에 비친 나는 나라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생각하고, 무엇이든 해내며,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이미 닳고 닳은 번뜩임. 노 교수는 내게 그 번뜩이는 젊음이 있다며 가르쳐 왔다. 날카로운 세상 속에 쉬이 젊음을 떠나 보낸 빛바랜 어른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는 어쩌면 이걸 바랐을지도 모른다. 두고두고 꺼내어 볼 인생의 갈피로 남은 그와 나의 찰나를.


    언젠가 갈 데 없는 불안이 내려앉을 때, 밀려오는 어둠에 속절없이 날숨을 빼앗길 때면 무심한 눈동자에 비친 반짝이는 모습을 기억하자. 마지막 책장을 덮는 매 순간 떠올리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4층 강의실과 한 줄의 문장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때의 우리. 반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초여름의 바람과 넘치도록 뻗어 나오던 맑은 생각들. 살짝 내려앉은 그의 은테 안경, 무심한 표정, 그리고 무엇으로도 자라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눈이 시리도록 빛나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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