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참기 시합의 명수였다. 어릴 적, 친구와 동네 목욕탕에 가서 알게 된 재능이었다. 동네 바둑학원에서 오랜 시간 동안의 집중력을 보여 주며 ‘석불’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는 사우나에 들어가서 오래 참기 시합을 하자고 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에게 바나나 우유를 사 주는 것이었다. 나는 시합에 응했다. 


      사우나 안은 무더웠다. 처음 오 분 정도는 버틸 만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듯 무거운 느낌이었다. 알몸이었지만 뭔가를 더 벗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대야에 담아서 가지고 들어온 찬물은 미지근해진 지 오래였다. 누군가가 사우나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들어오는 바깥공기가 나를 유혹했다. 이십 분이 지나자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후텁지근한 열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패배를 인정하고 바나나 우유를 사주는 것이 현명해 보였다. 내가 일어나자 친구가 홍조를 띤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친구의 비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패배감이 들었지만 사우나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훨씬 더 컸다.


      그때 내 시선에 사우나 구석에 비치되어 있는 모래시계가 들어왔다. 호기심에 나는 그것을 들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뒤집으니 고운 보라색 모래가 위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래가 떨어져 서서히 쌓이는 과정에 정신이 팔렸다. 나는 모래시계 안의 모래가 쌓이면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었다. 쌓인 모래는 다시 위쪽에 위치하여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모래시계를 수 차례 뒤집었을 무렵, 친구가 벌떡 일어나 사우나 밖으로 달려갔다. 문밖에서 나를 부르며 바나나 우유를 살 테니 빨리 나가자고 했다.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빨면서 친구는 내게 ‘너보다 엉덩이 무거운 애는 못 봤다’ 고 혀를 내둘렀다.


      그 뒤로 나는 다른 친구들과 목욕탕에 갈 때면, 사우나에서 오래 참기 시합을 해서 진 사람이 바나나 우유를 사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쟤 정도는 내가 이기지’라고 생각했던 친구들 모두 흔쾌히 응하고는 사우나를 나와서 바나나 우유를 샀다. 나는 오래 참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오래 참기 시합을 할 때면 나는 머릿속으로 모래시계를 돌렸다. 모래가 다 떨어지면 다시 돌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돌리고 나면 시간을 생각보다 꽤 오래 흘러 있었고 친구들은 대부분 나가떨어지곤 했다.


      학창 시절 때 담임선생님들은 내 성적표에 대부분 같은 의견을 썼다.


      ‘끈기 부족. 집중력 낮음. 산만. 가정에서 많은 학습지도 부탁 드림.’


      그것은 내가 공부에 소질이 없는 열등생이라는 사실을 돌려서 말하는 교사들의 화법이었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나의 성적을 농담의 소재로 삼곤 했다. 그 농담에는 패배의식이,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오고 마는 자기혐오가 담겨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담임 선생님들의 의견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끈기가 부족하고 산만하다는 것은 나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고 나는 무슨 일이든 금방 포기해 버렸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문법을 공부하다가도 이해되지 않으면 책을 덮어 버렸다.


      ‘어차피 난 끈기가 없으니까.’


      학창시절 내내 듣고 살았던 말이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가능성을 속단하고 스스로 막아 버렸다. 포기가 빠른 것은 학업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귈 때조차 마찬가지여서 나는 학교에서 늘 혼자였다. 식판을 맞대고 함께 밥 먹을 친구가 없었기에 나는 급식실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어렵던 시절의 옛 이야기처럼 물로 배를 채우는 날도 있었다.


      그 시절, 내 마음 속에는 늘 무겁고 슬픈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상처이거나 패배의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창밖으로,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 삶이 저 흙먼지보다 더 높이 오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군대에 입대했을 때도 학창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입대하자마자 정훈교육 시간에 졸아서 벌을 받았고, 화생방 훈련 시간 때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독가스를 참지 못해서 조교들을 냅다 들이박고 훈련장을 뛰쳐나갈 정도였다. 당연히 벌점은 차곡차곡 적립되어 주말이면 군기교육을 받곤 했다. 내가 전투병이 아닌, 운전병의 보직을 맡은 것은 운이 좋았다.


      혹한기 훈련 때였다. 내가 속해 있던 기동대의 훈련 강도는 매우 높았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텐트를 치고 일주일을 숙영했다. 나는 운전병이라서 그나마 형편이 나았고, 가까운 군부대에서 식사를 트럭에 실어서 훈련장까지 가져오는 역할을 맡았다. 혹한기 훈련 마지막 날, 부대원들은 산 밑의 어느 하천에서 냉수마찰을 실시했다.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대대장이 말했다. 냉수마찰에서 가장 오래 버티는 사람에게 2박 3일 포상휴가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못 참겠으면 바로 나오라고, 휴가보다 안전과 건강이 먼저라는 것을 강조했다. 포상휴가라는 말을 들은 부대원들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포상휴가라는 말에 눈이 뒤집힌 나도 냉수마찰에 참여했다. 맙소사. 겨울의 하천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추웠다. 5분 정도가 지나자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졌다. 동상 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나무들이 걸치고 있던 바람을 털 때마다 이가 떨렸다. 말년을 앞둔 병장들은 금방 나가 버렸고 계급이 낮은 병사들도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를 비롯해서 네 명의 병사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을 떨어댔다.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다. 그에 비해, 다른 세 명의 병사들은 조금도 떨지 않고 묵묵히 서있었다. 그 태연한 모습에 기가 죽었다. 나는 저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포기한다고 해서 누가 흉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4등이면 잘했지, 하고 생각하며 하천을 나가려고 할 때, 내 옆의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문득, 머릿속으로 무엇인가 불현듯 떠올랐다.


‘너 그럴 줄 알았다.’


      아, 어느새 내 앞으로 어린 시절의 사우나가 떠밀려 와 있었다. 사우나 밖으로 나가려던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던 친구의 얼굴도. 갑자기 떠오른, 어린 시절의 오래 참기 시합이 나를 붙들었다. 나는 모래시계를 돌리던 순간을, 모래시계를 돌리는 행위에 빠져서 더위와 오래 참기 시합마저도 잊었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그제야 나는 모래시계를 돌리던 순간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몰입이었다. 나는 차분히 심호흡을 했다. 하천에서 눈을 거두어 산 너머로 일출을 지켜봤다. 마음이 초연해졌다. 나는 한없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한없이 무거워진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내 몸이 차가운지 뜨거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추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진통제는 바로 몰입이니까.


      “그만, 그만.”


      그새 병사 한 명이 하천 밖으로 나가자, 대대장이 남은 도전자들을 불렀다. 우리는 덜덜 떨면서 하천 밖으로 나갔다. 대대장이 어깨를 두드리며 우리 세 명에게 모두 포상휴가를 약속했다. 나는 그렇게 감기와 포상휴가를 얻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도 깨달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시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10km 완주 메달을 땄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전에는 지겹게 느껴지던 공부도 독서도 꽤 재미있었다. 신발치수만큼 나오던 토익 점수도 응시할 때마다 서서히 오르는 점수가 뿌듯하다. 글재주는 없지만 문예공모전에도 자주 투고한다. 나는 도전하는 것이 재미있다.


      우리네 삶이란, 오래 참기 시합이 아닌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몰입하며 살아야 하는 나날임을 이제 나는 안다. 내 삶이 더 이상 따뜻하지 않거나 시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삶의 진통제, 고통보다도 깊은 몰입으로 또 다시.


*본 게시물은 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Posted by 교보생명 교보생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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