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4. 17:24
칵테일은 본래 맛없고 싼 술을 맛있게 먹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칵테일 중 하나인 진토닉과 마티니가 대표적인 예죠. 이들의 기주(基酒: 칵테일의 기본이 되는 술)가 되는 ‘진(Gin)’은 네덜란드의 한 약국에서 처음으로 판매가 되었는데, 값이 저렴하고 독하면서 맛이 없는 술이었습니다. 이것이 영국과 유럽 각지로 수출되면서 각종 칵테일로 만들어졌죠.
2018년 주류 소비 트렌드 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사람들은 도수가 낮고, 가벼운 맛과 향을 가지는 술을 찾는다고 합니다. 과즙, 계란, 우유, 시럽, 향료, 리큐르 등을 통해 부담 없는 맛과 향을 내는 칵테일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죠. 우리의 전통주도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맞이해 ‘힙’ 해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전통주가 생소한 젊은 소비자층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칵테일들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전통주 칵테일 만나기 위해 제가 찾은 첫 번째 장소는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아이디어스 크래프트 하우스’라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아이디어스’라는 핸드메이드 마켓에서 운영하는 곳인데요, 발효주, 증류주, 칵테일, 막걸리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을 판매하고 있으며 전통주를 활용한 이색 칵테일로 유명한 곳입니다.
첫 번째 전통주 칵테일 ‘신례합니다’의 기주는 ‘신례명주’입니다. 신례명주는 얼마전 SBS ‘맛남의 광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제주 감귤을 원재료로 하며 오크통에서 2년 이상 숙성시키는 브랜디의 일종입니다.
대부분의 술이 그렇지만, 신례명주는 그 맛과 향이 특별한 흐름을 가진 술입니다. 브랜디답게 첫 향과 맛은 알코올의 느낌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그 향에 적응해 나갈 즈음, 시트러스의 풋풋하고 상큼한 향이 퍼지기 시작하죠. 이윽고 감귤 향이 진하면서 달콤한 술의 맛과 어우러지기 시작하고, 끝에 이르러서는 두 맛과 향이 진한 여운으로 혀와 입안 가득 남습니다.
칵테일 신례합니다는 이러한 신례명주 특유의 흐름을 담은 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감귤 껍질의 향을 지닌 채 한 모금 머금으면 풍성한 레몬과 자몽의 시트러스 향이 입안에 가득찹니다. 레몬 향이 자몽 향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해 가며 조금 두터워진 향이 신례명주, 고소리주의 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죠. 마지막으로 남는 진한 술의 여운에도 기분 좋은 산뜻함이 남는 술입니다.
기주: 신례명주
부재료: 고소리술, 레몬시럽, 자몽시럽, 감귤 껍질
알코올 향: ★★☆☆☆ (실제 알코올 함량 16%)
상큼함: ★★★★☆
달콤함: ★★★☆☆
씁쓸함: ★☆☆☆☆
누룩향: ★☆☆☆☆
2. 맛과 향의 기분 좋은 상승효과, ‘백일몽’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전통주 칵테일 ‘백일몽’의 기주는 ‘계룡백일주’입니다. 이 술은 찹쌀, 솔잎, 황국화, 잇꽃, 진달래꽃, 오미자 등을 원재료로 하는 술로, 양조 기간이 백일이기에 백일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일주는 강한 누룩 향과 함께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특징입니다. 누룩 향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양한 향기가 은은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기분 좋은 맛과 향을 자랑하죠.
백일몽은 기주의 맛을 보완하고 완성시킨 칵테일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기주가 부드럽고 맑은 단맛을 가진 술이었다면, 백일몽은 부드럽고 달면서 상큼하면서 씁쓸하기까지 한 맛의 절묘함을 모두 갖추고 있죠. 그야말로 칵테일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쓴맛, 신맛, 단맛의 3박자를 다 잡은 셈입니다.
우선 첫 향에 레몬 림의 상큼함이 코 끝을 찌르는데요, 상큼함으로 끝나지 않고 백일주 특유의 구수한 향이 뒤늦게 올라옵니다. 상큼함과 구수함이 잘 어울릴 줄 상상도 못했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절묘한 조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또 그 절묘함은 향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입에 머금으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백일주의 깔끔한 단맛입니다. 그리고 전의 누룩 향과 레몬 향의 조화가 그 뒤를 받쳐 줍니다.
한국의 전통주를 칵테일로 만들 때 중요한 것은 특유의 향을 죽이지 않으면서, 더 많은 향과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백일몽은 기본과 맛의 상승효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느낌이었습니다.
기주: 계룡백일주
부재료: 릴렛, 레몬, 식용 장미꽃 잎
알코올 향: ★★★☆☆ (실제 알코올 함량은 26%)
상큼함: ★★★☆☆
달콤함: ★★★☆☆
씁쓸함: ★☆☆☆☆
누룩향: ★★★★☆
3. 한국의 뱅쇼, ‘프림 둘, 설탕 하나’
전통주 칵테일을 만나기 위해 찾은 두 번째 장소는 역삼역에 위치한 ‘작(酌)’이라는 전통주 바(Bar)입니다.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우리 나라의 전통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으로, 모던한 느낌의 전통주를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세 번째 전통주 칵테일, ‘프림 둘, 설탕 하나’는 ‘감홍로’가 기주인 칵테일입니다. 감홍로는 멥쌀, 누룩, 용안육, 정향, 진피, 계피, 지초 등의 다양한 약재를 넣어 만든 것으로, 죽력고, 이강고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힙니다. 은은한 감칠맛과 약재의 매운 향이 잘 어우러지고, 높은 도수에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이 특징이죠.
‘프림 둘, 설탕 하나’는 온도와 맛이 뱅쇼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뱅쇼는 와인에 시나몬, 과일 등을 넣고 따뜻하게 끓인 음료인데요, 두 음료 모두 계피가 들어가 있고, 따뜻하게 데워 마시며, 몸을 데우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이 칵테일은 무엇보다 따뜻한 느낌이 많이 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엔 계피 가루의 향과 폭신하게 올라간 우유 거품의 고소한 향이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우유 거품과 아래 깔린 술을 한 모금 크게 머금으면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에 뒤이어 매콤 달달한 감홍로의 맛이 치고 올라오죠. 매콤함이 사그러질 때쯤 진하고 약간 씁쓸한 향이 기분 좋은 여운으로 입안에 남습니다.
기주: 감홍로
부재료: 우유, 홈메이드 바닐라 시럽, 계피 가루
알코올 향: ★★★☆☆
상큼함: ★☆☆☆☆
달콤함: ★★★★☆
씁쓸함: ★★★☆☆
누룩향: ★★☆☆☆
오늘의 마지막 전통주 칵테일, ‘한강의 기적’은 ‘문배주’를 기주로 하는 칵테일입니다. 한강의 기적은 국내 전통주 바텐더 1호로 알려진 김태열 씨가 처음 개발한 칵테일로, G20, EU총회, OECD 만찬주 등으로 사용된 바 있습니다.
문배주는 메조, 찰수수를 주원료로 만드는 증류식 소주입니다. 문배주라는 이름은 술의 향이 문배나무(배나무의 일종)의 과실 향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독한 술답게 맛과 향 자체는 강한 편이지만 삼키고 나면 입안에 배 향이 오랫동안 남습니다.
문배주를 바탕으로 만든 한강의 기적은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기분 좋은 술입니다. 첫 입을 머금으면 레몬 향과 파인애플 향이 어우러져 풍부한 새콤함이 입 전체에 빠르게 퍼집니다. 자몽 시럽은 이에 질 새라 톡톡 튀는 레몬 향과, 그것보다는 무게감 있는 파인애플 향의 중간에서 중심을 잡고 있죠. 조금 더 머금으면 레몬 향이 사그라들며 상대적으로 진한 느낌의 파인애플 향이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주인 문배주가 그 뒤에 부족했던 달콤 씁쓸한 부분을 채우며 들어옵니다.
이곳의 한강의 기적은 가니쉬로 올라간 레몬필과 태운 계피 껍질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한 모금 마시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계피 태운 향과 레몬 필의 상큼함이 은은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지죠. 또 잔 가득 들어있는 얼음의 냉기가 레몬과 계피의 향을 온 얼굴로 느끼게 합니다. 마시기 전부터 마시는 사람의 후각과 촉각을 자극하니 즐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주: 문배주
부재료: 레몬 주스, 파인애플 주스, 자몽 시럽, 레몬 껍질, 계피 껍질, 장미 꽃잎
알코올 향: ★★★☆☆
상큼함: ★★★★☆
달콤함: ★★★☆☆
씁쓸함: ★★☆☆☆
누룩향: ★☆☆☆☆
이제 전통주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재료들, 혹은 우리에게 낯선 재료들과 함께 어우러져 변화하고 있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주와 맥주는 질리고, 양주나 와인은 부담스럽다면 오늘 저녁에는 새삼 힙해진 우리의 전통주 칵테일을 선택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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