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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꿈사랑/교보생명

살아 숨 쉬는 교보생명의 역사를 찾아서! 교보생명 창립사료실에 다녀오다

l 교보생명 창립사료실


교보생명 공식블로그 '가족·꿈·사랑'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프론티어 기자단 원지한입니다. 그동안 프론티어 기자단으로서 여러분께 여러 문화 활동과 즐길 거리, 교보생명에 대한 생생한 소식들을 안내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교보생명의 역사를 담고 있는 특별한 곳들을 찾아보았어요. 바로 교보생명 창립자인 대산 신용호 창립자의 집무실과 교보생명 창립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교보생명 창립사료실이에요!



이날은 3기 프론티어 기자단 모두가 모여 교보생명을 세운 대산 신용호 창립자님과 교보생명에 대한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까요~?!





 교보생명 신용호 창립자님의 집무실을 둘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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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창립사료실을 처음 들어서면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님의 집무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 집무실은 창립자님이 돌아가시기 전의 상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답니다.

실제로 수상하신 대통령표창, 국민훈장, 세계보험협회(IIS)에서 받으신 세계보험대상, APO 국가상 상패나 메달 등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 외에도 창립자님이 생전에 사용하셨던 만년필, 음반, 담뱃대 등 여러 물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신용호 창립자님은 평소 지식을 사랑하고 평소 아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즐기곤 하셨대요. 



이날 교보생명 창립사료실 안내를 맡아주신 교보생명 홍보팀의 강문영 담당자님과 우리 3기 프론티어 기자단의 모습이에요! 모두 담당자님의 말씀 하나하나 놓치는 것 없이 열심히 집중해 창립자님의 삶을 듣고, 집무실을 둘러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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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교보생명의 사옥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창립자님은 인문과 예술에 관심이 많으셨고, 굉장히 미적이셨다고 해요.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사옥은 시저 펠리(Cesar Pelli), 강남 교보타워는 마리오 보타(Mario Botta)라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세웠는데, 특히 강남 교보타워는 17년 동안 설계도를 10번이나 재검토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서 세워진 사옥이라고 해요.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뿐만 아니라 강남, 대구 동성로 등 여러 사옥 모형들도 만나볼 수 있었답니다. 현재 교보생명 본사 사옥은 광화문의 랜드마크로 불릴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을 뽐내고 있는데요, 지은 지 30여 년이 된 건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놀라웠답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창립자님의 책상을 볼 수 있었어요. 이 책상 역시 창립자님이 마지막 집무하신 날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해요. 

참고로 이 집무실은 시간이 멈춰있는 상태인데요, 신용호 창립자님이 임종을 맞으셨던 2003년 9월 19일 18시 1분을 기점으로 모든 시계가 정지된 상태랍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집무실 안의 물건들이 바뀌거나, 시계가 움직일 일은 없을 것이라 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숙연한 마음이 들었어요.



창립자님은 생전에 ‘나이가 들더라도 마음가짐이 청춘이면 청춘’이라고 말을 하셨었다고 해요. 집무실 책상에도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이 펼쳐져 있었는데, 정말 인상 깊었어요.



집무실 옆으로는 응접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벽면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는 익숙한 글귀가 보였어요. 교보문고 앞 비석에 새겨져 있는 글귀죠? 


 교보생명의 창립초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교보생명 창립사료실



집무실을 둘러본 뒤 프론티어 기자단은 바로 옆에 있는 창립사료실로 이동했어요. 이 박물관은 교보생명 창립 초기, 당시의 물건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라고 해요. 계속해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3기 프론티어 기자들의 모습이에요.

예전에는 보험회사의 회사명에 ‘생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신용호 창립자는 국민교육진흥이라는 창립이념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교육’이라는 단어를 회사명에 넣고 싶어 하셨대. 그런 과정에서 당시의 정부와의 접촉 등 각고의 노력으로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교보생명의 시초인 회사를 창립하셨답니다.



교보생명의 최초의 사옥은 종로1가 60번지였는데요, 위 사진은 교보생명  창립 당시의 모습이에요. 이날 창립자님은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나 하셨는데 “선진국에서도 보험회사가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50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나는 25년 이내에 우리 회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겠다. 그리고 25년 이내에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약속보다 3년 앞당긴 1980년 광화문 종로1가 1번지에 교보생명 본사 사옥이 완공 되었답니다.




그 외에도 이곳에는 많은 역사 사료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창립자님은 문학에 관심이 깊으셔서 대산문화재단이라는 문화재단을 세우시기도 하셨는데요. 현재 대산문화재단은 여러 방면으로 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지원함으로써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재단으로 자리하고 있답니다.

한, 교보생명의 창립이념인 <국민교육진흥>을 구현하기 위하여 여러분에게도 친숙한 ‘교보문고’를 1980년 말에 설립하셨는데요, 당시 대한민국은 독서율이 저조했기 때문에 여러 사회운동을 펼치셨대요. ‘1,000만 명 독서인구 저변확대운동’이라는 캠페인을 전개를 하셨다고 해요. 



이 사진은 대산 신용호 창립자님의 청년 시절,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 찍으신 사진이에요. 창립자님의 가문은 대대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고 해요. 오른쪽 아래 담배는 실제 1950년대 담배인데요, 교보생명 설립 초기에는 "담뱃값만 아껴도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방향으로 교육보험을 창안하셨다고 해요. 오른쪽 비치된 책은 창립자님이 설립한 출판사의 첫 출판물인데요, 독립운동가 여운형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답니다.


< 창립자가 영면하신 당시의 2003년 광화문글판 가을편 >


교보생명 창립사료실에서는 1991년 걸린 1호 광화문글판도 볼 수 있었답니다. 광화문판은 창립자님이 처음 아이디어를 내어 실행에 옮겨졌다고 하네요. 


여기까지 교보생명 창립 초기의 모습 소개해 드렸는데 잘 살펴보셨나요?! 교보생명의 핵심가치는 ‘정직과 성실’, ‘도전과 창의’. ‘고객중심’ 인데요. 교보생명 창립사료실을 돌아보면서 저는 창립자님의 도전정신과 창의성, 성실성, 실행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답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실천으로 행동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국가적인 사명감을 안고 묵묵히 걸어간 창립자님의 도전정신이 대단하구나, 싶은 것을 느꼈어요.

또, 매스컴에 흔히 등장하는 '기업 회장님'들의 이미지는 대개 고급 가구가 늘어선 집무실과 화려한 일상과 연결되기 마련인데,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리적이고 검소한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느낌을 받았어요. 

교보생명 창립사료실을 둘러보고 창립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막연한 이미지로 느꼈던 교보생명의 가족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실제 창립자님의 진심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