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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광화문글판, 계절 속 우리의 마음을 울리던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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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31. 19:03

 

 

 


광화문글판 <2002년>

 

 

 

△ 2002년 겨울편

2002년 1월 ~ 2002년 3월, 이성부 <봄> 발췌 인용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2002년 봄편

2002년 4월 ~ 2002년 6월, 조태일 <꽃나무들> 발췌 인용 

 

 헐벗을 날이 오리라

바람부는 날이 오리라

그리하여 잠시 침묵할 날이 오리라.

 

겨우내

떨리는 몸 웅크리며

치렁치렁한 머리칼도 잘리고

얼어붙은 하늘 향해

볼 낮이 없어, 피할 길이 없어

말없이 그저 꼿꼿이 서서

떨며 흔들리리라.

 

푸름을 푸름을 모조리 들이마시며

터지는 여름을 향해

우람한 꽃망울을 준비하리라.

 

너희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너희들은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고

너희들은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고

너희들은 누나를 누나라 부르고

동생을 동생이라고 처음 부르던

이땅을 부둥켜 안고,

 

결코 이 겨울을 피하지 않으리라

결코 이 땅을 피하지 않으리라.

이 곳 말고 갈 수 있는 땅이

어디 있다더냐.

 

헐벗을 날이 오더라도

떨 날이 오더라도

침묵할 날이 오더라도

 

 

 

                          

 

△ 2002년 여름편

2002년 7월 ~ 2002년 9월

 

 

 

△ 2002년 가을편

 

2002년 10월 ~ 2002년 12월, 박재삼 <지는 잎을 보면서>

 

초봄에 눈을 떴다가

한여름 뙤약볕에 숨이 차도록

빛나는 기쁨으로 헐떡이던 것이

어느새 황금빛 눈물이 되어

발을 적시누나.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갈 때에야

더욱 경건하고 부끄러워하고

사람들은 적막한 바람속에 서서야

비로소 아름답고 슬픈 것인가.

 

천지가 막막하고

미처 부를 사람이 없음이여!

이제 저 나뭇잎을

우리는 손짓하며 바라볼 수가 없다.

그저 숙이는 목고갯짓으로

목숨은 한풀 껶여야 한다.

아, 묵은 노래가 살아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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