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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대학생동북아대장정! "가자! 고구려의 기상이 숨 쉬는 대륙으로" (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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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6. 15:59

 





안녕하세요, 프론티어 기자단 5기로 여러분께 처음 인사 드리게 된 이은주입니다. ^0^ 제가 여러분들께 처음으로 선보일 이야기는 바로 2014 교보생명 대학생동북아대장정(이하 동북아대장정)이에요. 이번 동북아대장정은 ‘청년이여, 대륙의 북방으로 가자!’라는 주제로 우리 민족이 찬란한 번영을 꽃피웠던 북방대륙을 탐방하는 것이에요.

 

지난번 한승은 프론티어 기자가 고구려의 첫 도읍인 졸본성(오녀산성)과, 두 번째 도읍인 국내성의 방어성 환도산성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제가 배턴을 넘겨받아 고구려의 최고 전성기를 일궈낸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발자취를 쫓아가 보려 해요. 그럼 지금부터 그 현장으로 함께 떠나보아요~!




중국에서의 세 번째 날 아침



전날 졸본성(오녀산성) 등반을 하느라 대원들 모두 취침에 들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답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뒤 아침 6시 30분이 되어 모두 기상해 호텔 앞으로 집결했답니다. 아침 체조와 구보를 하기 위해서였어요.





저희가 구보를 했던 이 강은 바로 압록강이에요! 강 건너편에 인가가 보이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는데요, 대원들 모두 술렁이며 저곳이 북한일 것이다, 아닐 것이다, 라며 궁금해하던 찰나 스태프 한 분께서 북한이라고 말씀해주셨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건너갈 수 있을법한 폭의 강이라 그런지, 저를 비롯한 모든 대원이 강 너머를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어요. 

 

굉장히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 땅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직접 바라보니 조금은 숙연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을 가진 채 대원들은 북한을 바로 옆에 두고 구보를 마저 했답니다.

 

구보와 체조를 모두 마친 뒤, 곧 시작될 답사를 대비해 다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국내성터를 돌아보기 위해 채비를 서둘렀어요.




지금은 아스라이 사라져 버린 번영의 흔적, 국내성터를 돌아보다

 

국내성터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금방 도착했어요. 지금은 무성하게 풀이 나 이곳에 찬란한 문화를 일구었던 고구려의 궁궐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였답니다. 웅장했던 성터에 사용되었던 돌들은 이 자리에 도시가 생겨나면서 집을 짓고 길을 만들다 보니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어요. 단지 자그마한 아파트 단지 너머, 길게 울타리를 둘러치고 보존한 것이 전부인지라 매우 애석했죠. 

 

중국 땅이 아니라 만약 우리나라에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응당 잘 보존되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이 수없이 많이 떠오르면서 마냥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문헌 등 남은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성은 내·외벽을 잘 다듬은 네모뿔의 돌로 쌓은 석축성(石築城)으로 동쪽 성벽의 길이는 554.7m, 남쪽 성벽의 길이는 751.5m, 서쪽 성벽의 길이는 715.2m이며, 둘레는 2,686m에 달했다고 해요. 또한 국내성의 축조방법은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성곽 축조의 주류로서 계승되었다고 해요. 

 

이러한 국내성은 장수왕 시대에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평양, 한성과 더불어 고구려 삼경(三京)의 하나였으며 평양 천도 이후에도 여전히 고구려의 정치·군사적 중심지의 하나였답니다.

 


국내성터를 돌아보면 성벽의 돌 색이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중국정부가 국내성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복원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물론 복원의 이유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높이 평가한 것이 아니라 동북공정을 위해 고구려사를 왜곡하기 위함이었죠.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이날 보고 배운 우리의 뿌리를 절대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깊이 해봅니다.




너무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렇기에 더 가슴을 아프게 했던 광개토대왕릉비





국내성터를 돌아본 뒤에는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러 갔답니다. 사진 속 자그마한 전각에 둘러싸인 저 안에 광개토대왕릉비가 자리해 있어요. 광개토대왕릉비에서는 가까이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그 웅장함을 전해드리는 것은 물론, 이러한 사진으로나마 여러분께 광개토대왕릉비를 소개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현재 이곳에서는 사진은 찍는 것은 물론이고, 애국가를 부르거나 태극기를 흔드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어 있어요. 

 

공안의 저지를 당하기 때문이었죠. 평야를 호령했던 늠름한 대왕을 중국 변방의 어느 장수라 표현하는 중국의 행태에 분노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지금은 머나먼 이국 땅에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것이라 부르지 못하고, 옛 조상의 터전을 찾아낸 감격스러운 순간조차도 저지를 당하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답니다. 

 

동북아대장정을 떠나기 전에는 막연하게 고구려와 발해의 옛 터전을 돌아보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기대와는 다른 차가운 현실에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죠. 이날의 기억을 절대로 잊지 말고, 우리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쯤에서 다시 분위기를 전환해, 여러분께 광개토대왕릉비의 의의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소개해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죠?!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19대 왕이에요. 그는 선왕이었던 소수림왕의 조카로, 소수림왕 시대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랍니다. 광개토대왕의 완전한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에요.

 

광개토대왕의 묘호를 풀어서 해석해보자면 ‘국강상 지역 무덤에 계시는 넓은 영토를 개척하시고 나라를 평안하게 하셨던 사랑스러운 큰 임금님’이라는 뜻으로,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단순히 북방 영토의 개척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어요.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번영은 물론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준 위대한 임금님이었던 것이죠. 

 

광개토대왕은 412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아쉬운 점은 그에 관한 기록이 매우 적다는 것이에요. 따라서 그가 누구와 결혼을 했고 자식은 얼마나 두었으며 왜 그리 일찍 승하했는지 등등, 정복군주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광개토대왕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 방법이 없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어요.

 


<광개토대왕릉비 (출처 : 두산백과)>



광개토대왕릉비를 처음 본 순간 저는 잠시 말을 잃었답니다. 거대한 비석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그 위엄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에요. 광개토대왕릉비는 4면 비에 총 총 1,775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 하나의 크기가 무려 손바닥만 하답니다. 높이는 6.39m로 아파트 층수로 따지면 약 2.5층에 달하는 높이라고 해요. 너비는 1.38~2.00m이고, 측면은 1.35m~1.46m로 불규칙하며 비의 머리 부분은 경사져 있답니다. 

 

비석에 적힌 글귀는 총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1부는 추모왕 즉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과 광개토왕의 행적(行跡), 2부는 광개토대왕이 재위했던 22년 동안 사방으로 병력을 어떻게 확장했는지, 3부는 광개토왕의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연호(守墓人煙戶)의 명단과 제도가 적혀 있어요.

 

때문에 이 비는 사료가 부족한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풀어줄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귀중한 유적이랍니다.




고구려 대왕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태왕릉과 장수왕릉, 오회분5호묘





태왕릉은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에 있는 고구려의 왕릉급 돌무지무덤이에요.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은 단순히 평범한 돌무덤이 아니라 계단 모양의 적석묘이기 때문에 태왕릉은 '계단식돌방적석묘'라고 불려요. 현재 태왕릉의 계단은 훼손되어 낮아진 상태이고, 과거에는 더욱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현재는 11단이 남아 있으며 잔존하는 무덤의 정상부는 한 변이 24m 정도의 평평한 면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무덤에서는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금·금동·청동·철기와 토기 등 1,000여 종의 유물이 출토되었어요. 태왕릉은 그 거대한 규모와 명문 벽돌이 출토되어 고구려의 왕릉으로 추정되었던 무덤이에요. 

 





태왕릉에 비해 장수왕릉(장군총)은 계단이 온전히 남아있어요. 하지만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으나 왕릉 뒤쪽을 둘러보니 물구멍으로 인해 붕괴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태왕릉과 장수왕릉의 중요한 차이는 시신을 안치하는 묘실의 입구가 중앙에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적석묘 중 가장 완성되고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답니다.

 

따라서 왕릉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왕릉일 수 있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능이 광개토대왕의 능인지 아니면 그의 아버지의 능인지는 아직 학회에서 논쟁 중이라고 하네요. 너무 복잡하고도 어려운 역사인 거 같아요. 

 


<오회분5호묘 널방 동벽의 청룡 벽화 (출처 : 네이버 백과)>



마지막으로 답사를 간 곳은 오회분5호묘였어요. 실내는 물론 실외에서도 사진 촬영이 어려워 여러분께 생생한 현장을 안내해드리지 못해 조금 아쉬워요. 이 무덤 안에는 사방신과 신선, 괴수, 일월신 등의 주제로 벽화가 그려져 있어요. 오랜 시간이 흘러 그림이 아주 선명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그 형태와 색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 규모와 섬세함에 대원들 모두 감탄사를 내뱉으며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답니다.

 

이 벽화에서는 당시의 농업과 수공업 등, 고구려인들의 주요 생산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데요, 덕분에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답니다. 무덤의 형태와 구조, 벽화의 내용 등으로 짐작해보면 무덤의 축조 시기는 대략 6세가 전반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해요.




수줍은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가득 담은 조선족 친구들과의 만남





이날의 모든 답사를 마치고 대원들은 집안의 조선족 학교로 향했답니다. 이날 점심 식사는 학교에서 먹었는데요, 학교 측에서 최대한 한국인들의 입맛에 가깝게 조리해주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오래간만에 잡채도 먹어보고, 중국에 도착한 이후로 처음으로 속 편히 배불리 먹었던 식사였어요.






점심 식사 후 조선족 친구들을 만났는데요,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가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하니 옆집 동생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먼저 각 조의 조장들이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뒤, 아이들에게 '왜 자신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열심히 어필한 뒤 일렬로 서 있으면, 아이들이 원하는 대원 뒤에 서서 조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어요.





조가 정해진 뒤에는 조별로 림보, 호키포키, 단체 줄넘기, 꼬리잡기 등의 게임을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많이 쑥스러워해서 함께 어울리는 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어색함은 허물어지고 모두 함께 어울리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언니, 오빠처럼 대원들을 따랐고 13기 대원들도 마치 친동생처럼 아이들을 귀여워했답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대화도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바로 선물 증정 시간이 있었어요. 어떤 친구에게 선물을 주게 될까? 대원들 모두 저마다 상상하며 정성스레 직접 골랐던 선물을 나눠주는 시간이었답니다. 포장도 예쁘게 해서 준비했는데요, 저희 조는 이렇게 선물들을 한곳에 모아둔 뒤 세 명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답니다. 선물의 종류는 다양했는데요, 학용품부터 화장품까지, 몇 개는 저도 탐날 정도로 좋은 선물도 있었어요. 





모름지기 선물이란 공평하게 나눠줘야 하는 법!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사람이 먼저 한 개씩 고르게 했는데요, 아이들 모두 좋아했으리라 믿어요. ^^





저희 조 친구들을 한 번 더 찍어보았어요. 다행스럽게도 선물을 각자 비슷하게 나누어 가져서 안심이었답니다. 헤어질 때 언니, 오빠들에게 사탕도 나누어 줄 만큼 정이 많이 들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에요.


잠시 동안 함께하면서 많은 정이 들어버렸던 지라 헤어짐의 순간이 많이 아쉬웠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저희 대원들은 조선족 친구들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답니다. 다음날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송강하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여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리는 것이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 또래의 대원들과 함께 있어서인지 게임도 하고 깊은 대화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금방 송강하에 도착했답니다. 이렇게 이날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동북아대장정의 세 번째 날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기 위해 저는 함께한 13기 대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힘든 행군 속에서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던 동료 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이렇게 동북아대장정, 대망의 3일차 기사를 마무리하려 해요. 다음 기사는 설주환 프론티어 기자가 장엄한 백두산의 정경과 아름다운 천지를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예정이에요. 남은 이야기들도 모두 기대해주시기 바라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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