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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모임에서 한 곡 부르신다면? '우리 가곡 베스트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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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8. 15:57




소소한 모임에서 노래 한 곡 부르는 게 친밀함을 나누던 코드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애창곡 하나쯤 있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런 추억의 무대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국 가곡을 권하고 싶어요. 여느 오페라 아리아로는 느낄 수 없는 공감을 우리말로 된 가곡에서는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연말에 부르기 좋은 우리 가곡 몇 곡을 골라보도록 할게요.






   

떠들썩하게 한 해 동안의 안부를 묻는 계절이 되니 인상 깊던 풍경 하나가 떠올라요. 몇 년 전 지인들의 연말 모임에서였어요. 산만한 연회장의 소음을 가르며 일흔이 넘은 노 교수가 사람들 앞에 나와 섰어요. 


“내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 한 편이 있어 이렇게 준비해왔습니다” 하더니 수첩을 꺼내어 준비해온 시 한 수를 낭창하게 읊기 시작했어요.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 너머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그리곤 그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을 멋지게 불러 젖혔죠. 성악가인 필자도 반할 만한 리사이틀이었답니다. 시를 낭송하고 가곡을 부르며 뜨겁고 폭신한 속내를 드러낸 노 교수에게선 나이를 찾아볼 수 없었어요. 노래를 듣던 필자의 가슴마저 뜨겁게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었답니다.


연말을 뜻있게 보내기 위해 누군가는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좋은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 노 교수는 시 낭송과 가곡연습을 하며 한 해를 정리했어요. 그분 나름의 송년 이벤트였을 것이에요. 매년 반복되는 그저 그런 연말일 수도 있겠지만 가사를 외우고 시어를 음미하며 사색 속에서 차분한 연말을 즐겼을 테죠.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이 얼마나 멋진 지성의 행위인가요?






  

지금은 좀 당황스러운 퍼포먼스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친밀함을 나누는 코드가 그러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소소한 모임에서 노래 한 곡 부르는 사람이 꼭 있었고, 누구나 끝까지 외워 부를 수 있는 애창곡이 한 곡씩 있던 시절 말이지요. 지금도 그런 추억의 무대를 그리워하며 즐기고픈 사람들에게 나는 한국 가곡을 부르시라 권하고 싶어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나 <아베마리아>도 좋지만 그에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느낄 수 없는 공감을 우리가곡에서는 부르는 이나 듣는 이 모두 함께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1964년 한 신문사가 새해맞이 기념으로 위촉하여 만들었다는 <그대 있음에>를 사람들 앞에서 부르려면 가사와 멜로디를 외워야 하고, 그 준비하는 시간 동안 사색의 기쁨 또한 맛 볼 수 있답니다. 김남조 시인의 명시를 온전히 나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음은 물론이에요. 그래서 아래에 연말모임에서 부르기 좋은 우리가곡 몇 작품을 소개해 드릴까 해요.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크으~ )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쫙쫙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허허허허허) 며엉태~~라고! (으음 허허허허허)’



위 곡은 건배제의가 오가는 연말모임 권주가로 제격인 <명태>(양명문 작시, 변훈 작곡)랍니다. 베이스 오현명 선생으로 대변되는 이 작품은 낭랑한 테너의 음색보다는 역시 낮고 걸쭉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곡이에요. 뱃노래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리듬과 흥겨운 선율이며 해학적인 가사가 재미있어요. 하지만 이곡의 진짜 백미는 연극배우의 독백처럼 눈을 질끈 감으며 “크으~” 하면서 입맛을 다시는 부분이나, “명태~~” 하며 길게 목청을 세운 뒤 “허허허허허” 호탕하게 웃어 제치는 능청스러운 추임새에 있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곡이 발표되었을 당시 ‘이것도 노래라고 발표하나’라는 평론이 나올 정도로 혹평을 받았고, 낙담한 변훈 선생은 작곡을 접고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백발의 오현명 선생은 특유의 넉살스러운 무드로 꾸준한 연주를 이어가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됐고, 현재는 언어의 억양과 사실성에 충실한 ‘리얼리즘 가곡의 걸작’으로 불린답니다. 뱃머리에 앉아 소주 한 잔 하듯, 뱃사람이 된 듯한 호연지기를 표현하며 익살스럽게 불러 젖힐 수 있는 곡이니 한번 시도해 보시길 빌어요.



근사하고 진지하게 성악가처럼 기량을 뽐내고 싶다면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작시, 임긍수 작곡)은 어떨까요. ‘KBS 신작가곡’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조수미가 앨범으로 발표하면서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곡이랍니다.



‘앞강의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을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봄을 향한 그리움과 희망의 서정을 회화적으로 묘사한 곡이랍니다. 그 시적 표현은 부르는 이나 듣는 이 모두를 금세 감정이입 하게끔 만들어요. 서서히 고조되어 정점에 올라 격양된 감정이 스르르 사라지는 멜로디로, 부르면서 점점 자신감에 차오를 수 있는 곡이랍니다. 흑백TV로 본 엄정행 선생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위 곡은 당대 최고의 스타 엄정행을 낳게 하고 한국가곡 보급에 크게 기여한 꾸준한 사랑을 받는 명곡 <목련화>(김동진 작사·작곡)이랍니다. 아름다운 서정을 품은 그러나 강한 희망의 메시지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싶네요.





세상의 모든 가곡은 시와 노래의 만남이랍니다.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성악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감상은 듣는 귀를 갖춘 소위 교양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랍니다. 저마다의 경험과 추억 상상으로 그려내며 부르고 감상하면 되는 것이지요.

조수미를 흉내 내도 좋아요. 또 최백호의 음색이고 조용필의 창법이면 어떤가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내가 경험하고 상상하며 만들어 낸 세계로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일과 같답니다. 수줍으면 수줍은 대로,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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