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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따뜻이, 스스로 오롯이 류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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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6:00

시인과 청년은 ‘한통속’입니다. 자기 앞의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자기 안의 열정을 온몸으로 지켜내며, 자기 밖의 무엇을 자신과 함부로 비교하지 않죠. 문학청년으로 살아왔을 뿐 ‘순수’ 청년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될 것 같다. 문학청년만 한 순수 청년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에요.

 

 

삼류의 품격

그의 빛나는 문장들은 숙취의 그림자가 살짝 남았거나 반짝 사라졌을 때 태어나요. 통음이 끝난 뒤에 떠오르는 통찰의 조각들로, 뜨거운 통신을 시도하는 것이죠. 그가 SNS를 즐기는 건 저자와 독자 사이에 ‘직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참으로 그다운 일입니다. 스스로를 ‘삼류 트로트 통속시인’이라 부르는 그에게, 통속은 ‘세속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뜻하기 때문이에요. 막힘없이 통하려는 마음. 그 마음 깊이 품고 그는 기꺼이 삼류라는 외길을 걷습니다. 그가 꿈꾸는 건 일류의 아류가 아니라 ‘삼류의 본류’에요. 만만한 듯 깐깐한 통속시인의 길이죠.

“슬픈 것은 아류지 삼류가 아니에요. 아류가 되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해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아류는 애초 그의 적성이 아닙니다. 지난해 그는 ≪싸나희 순정≫이란 제목의 ‘이상한’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놨어요. 페이스북에 올려 큰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그림과 함께 엮은 것인데, 출판사가 ‘스토리툰’이란 작명을 따로 했을 만큼 내용도 형식도 새로워요. 주인공 유씨와 집주인 아저씨의 관계는 묘하게 따뜻하고, 심심찮게 나오는 ‘순정’이나 ‘동심’ 같은 단어들은 뜻밖에 뭉클해요. 잊고 있던 것들을 슬쩍 일깨워주는 것. 정체불명의 글을 쓸 때조차, 시인이 할 일을 그는 잊지 않습니다. 시집도 ‘전에 없던’ 것이긴 매한가지에요. 등단 18년 만에 펴낸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은 틈틈이 발표한 시들을 한 권으로 엮는 여느 시집과 달리,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글들로만 묶은 전작시집이에요. 오랜 세월 문단 바깥에 머물며, 술을 익히듯 시를 익혀온 것입니다. 그의 사전엔 ‘관행’이란 단어가 없어요. 무언가를 행할 때 그가 준거로 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흡족하지 않으면 그게 뭐든 하지 않아요. 남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스스로 만족하면 쉽게 상처받지 않죠.” 첫 시집을 낸 지 6년 만인 올해 그의 두 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옵니다. ‘상처적 체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그가, 또 다른 시어들로 우리의 등을 토닥일 것입니다.    

 

 

믿고 좋아하고 사랑하면

가난 속의 소년은 일찌감치 시인을 꿈꿨습니다. 짝사랑하던 국어선생님이 ‘시재’가 있다고 칭찬해줬기 때문이죠. 고교시절엔 온갖 백일장을 휩쓸었어요. 신기한 것은 대상 아니면 탈락이었다는 것. ‘어중간한’ 타이틀은 늘 그의 것이 아니었어요. 김광석이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건 대학을 졸업하기 전의 일이에요. 겨우 이십대 중후반에, 너무 아프면 사랑이 아니란 걸 알아버린 것이에요. 성숙했던 그 청년은 그 즈음 시로 등단했습니다. 광고회사와 기업 홍보실에서 밥을 벌면서도, 가슴 안엔 언제나 시가 흘렀습니다.

“IMF가 터지고 나서 인도로 여행을 떠났어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반 년 가까이 그 나라를 떠돌았죠. 분명 우리보다 불행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곳 사람들의 위대한 긍정을 보면서, 가난해도 불행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귀국 후엔 횡성에서 고추농사를 지었어요. 가난 속의 행복을 알아갈 무렵, 친구의 부름을 받고 상경했어요. 그리고 일을 냈죠. ‘휴대폰 벨소리 다운로드’라는, 세계 최초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이에요. 아이디어만 있을 뿐 친구도 그도 그 분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어요. 바로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거라고, 믿고 좋아하고 사랑하면 어떤 일이든 가능해진다고… 10년가량 벤처사업가로 살았던 그는 ‘자발적 은퇴’ 이후 지금까지, 글을 쓰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랑을 하며 지내요. 몇 년 전부턴 KBS <역사저널 그날>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에요. 평소 좋아했던 역사가 갈수록 더 힘이 됩니다.

“외로울 땐 역사책을 읽으세요. 그토록 위대한 인물들도 결국 모두 죽었잖아요. 그러니 그리 애면글면할 필요가 없어요. 순간을 가치 있게 사는 것, 그것만 잊지 않으면 돼요.” 그의 주변엔 ‘청년들’이 유독 많아요.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첫 시집이나 첫 소설책을 내는 열혈청춘들. 자기 안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무언가를 해내고 마는 그들이 그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새봄의 발소리에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스밉니다. 지독했던 겨울이 소리없이 저기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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