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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나의 첫 여자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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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1. 14:36

“저, 곧 휴가인데 좀 멋지게 잘라 주십시오!”


    나는 군대에 있을 적 이발병이었다. 이발병의 역할은 간단했다. 머리가 길어 나에게 찾아온 병사의 머리를 다 같은 모양으로 짧게 깎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멋지게 잘라 달라고 한들 모두 비슷한 밤톨머리가 될 뿐이었다.


    이런 이발병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남자 손님밖에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하면 여자의 머리를 자를 일은 전역하는 그 날까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여자 손님이 나타났다. 그 손님은 어머니의 부탁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 내가 군대에서 이발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꺼내신 부탁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누구보다 씩씩하셨다. 하나라도 더 아껴야 한다며 악착같이 옷들을 꿰매 입으셨고 다 본 신문지나 안 쓰는 상자는 한데 모아 고물상에 파셨다. 할머니 방에 갈 때면 어린 나를 앉혀 놓고 당신이 젊었던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으시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세월이라는 화살은 날카롭게 다가왔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할머니의 기억은 오락가락했다. 언제나 당당하게 집을 나갔다 오셨던 할머니는 그쯤부터 집 밖에서 길을 잃어 못 돌아오시곤 했다. 방금 식사를 하셨으면서 밥을 달라고도 하셨으며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해방 전, 강진에서 소꿉친구가 순사가 되어 나타난 이야기는 수십번은 더 하셨고, 자신이 재봉틀질을 누구보다 빠르게 해 공장에서 제트기라 불렸다는 것은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했다. 난 그 이야기가 재미있어 듣고 또 들었지만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그 되새김질마저 그치게 되었다. 말과 단어조차 잊어가는 모습이 내가 군대 가기 전에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할머니의 치매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휴가 때마다 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점점 더 야위었다. 어깨는 한없이 작아졌고 팔은 얇아졌다. 말수가 없어지셨을 뿐더러 가족들도 못 알아봤다. 나를 보고 그나마 하시는 말씀도 “지훈이(형의 이름)왔구나.”였다.


“내가 미용실을 안 데려가 봤겠니….”


    어머니는 머리가 너무 자라 헝클어진 할머니를 데리고 동네 미용실을 가려고 하셨단다. 하지만 미용사가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자르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며 움직여 대는 통에 도저히 이발을 할 수 없더란다. 그러니 나더러 군대에서 배워온 그 기술을 한번 뽐내보라 하셨다. 손자가 깎아주면 그래도 얌전하시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여자의 머리는 잘라본 적은 없었기에 그 부탁이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이내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 집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로 집에 있던 신문지와 보자기, 이발도구를 챙겨서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내가 이발을 시작한 후 처음 만난 그 ‘여자 손님’은 멍하니 방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가 나자 할머니는 내 쪽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지훈이 왔냐.”

“할머니, 둘째 세훈이요. 할머니 머리 잘라줄라 왔소. 신문지 깔아야 되니께 잠깐만 일어나 보쇼.”


    바닥에 빠르게 신문지를 깔았다. 할머니를 그 위에 앉히고 나는 그의 등 뒤로 갔다. 미용실에서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셨다면서 손자 앞의 할머니는 너무나도 얌전했다.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시면서 머리를 맡기고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본 할머니는 더 야위어 있었다. 목에 감은 이발용 보자기는 한 품이 넘게 남아돌았다. 한동안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보다 이발을 시작했다. 가위를 들고 푸석한 흰머리를 잘라냈다. 바닥에 흰 머리카락이 쌓여갔다. 위잉거리는 이발기를 켜고 할머니의 주름진 목 뒤를 쓸었다.


    군대에서 봄철 외곽 근무를 들어가면 산기슭마다 미처 녹지 않은 잔설(殘雪)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의 기억은 녹지 않은 채 남아 있던 그 잔설 같았다. 산등성이가 봄을 맞을 준비로 들뜰 때 잔설만은 그대로 남아 한 켠을 지킨다. 켜켜이 쌓인 기억 속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기억들은 마지막 계절에 남겨진 눈 같았다. 할머니의 기억은 그 잔설만큼이나 쓸쓸하다. 녹아내려 사라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눈이 내려 쌓이지도 못한다. 그 끝내 녹아 버린다는 운명만을 간직한 채. 할머니에게 남아 있는 그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내 새끼 세훈아. 고맙다.”


    위잉거리는 소리를 배경 삼아 생각에 잠겨 있던 나에게 할머니의 한마디가 들려 왔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러 주셨다. 이번에는 분명히 ‘지훈이’가 아니라 ‘세훈이’였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 목소리로 너무 오랜만에 듣는 내 이름에 눈물이 복받쳤다.


“아따 할머니. 내가 기억이라도 나셨는갑네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


    대답없이 할머니는 그저 울기만 하셨다. 너무나도 짧았지만, 기적 같은 순간 앞에서 나의 마음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울먹임을 눌러가며 할머니의 남은 머리를 잘라 나갔다. 방에는 할머니의 울음소리와 위잉거리는 이발기소리만 맴돌았다. 그날 신문지 위로 쌓여 가던 그녀의 흰 머리카락처럼 새하얀 눈이 내 마음속에 소복이 내려앉은 듯 했다.


    군인에게 휴가는 재충전의 기회라고들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음 휴가가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를 얻게 되었다. 휴가 때마다 적당히 자라 있는 할머니의 머리를 잘라 드리는 것이 휴가의 보람이었다. 그 ‘여자 손님’은 나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남은 군 생활을 보내는 데 큰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기억 속 잔설들도 더 이상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아 있던 손자에 대한 기억은 봄날의 햇빛에 가장 반짝이는 눈송이가 되어 눈부시게 빛났으니 말이다.


*본 게시물은 2019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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