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9. 18:13
반복되는 일상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 이것이 수험생들의 삶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새벽에 잠들기까지, 고등학생들은 오로지 입시만을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그렇게 여느 날과 같이 공부만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이상한 임무가 주어졌다.
“미션, 새싹을 틔워라!”
고등학교 3학년 첫 생명과학 수업 때였다. 문과 학생들에게 과학이란, 흥미롭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섬과 같았다. 우리는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과학에 거리감을 느꼈다. 그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과학은 어렵지 않다. ‘생명과학’이라는 교과명에 충실하게, 올해 우리는 각자 생명 하나씩을 키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생명과학 성적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행평가로 ‘식물 키우기’를 한다는 의미였다. 모두가 당황했다. 식물 키우기라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그것도 자기 하나 챙기기 힘든 수험생이 교실에서 한가하게 식물이나 키운다니. 느닷없이 주어진 이상한 숙제에 황당하고 한편으론 억울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할만한 일반적인 과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한 해를 뒤바꾼 ‘생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수업 시간의 활동 목표는 ‘식물 정하기’였다. 앞으로 키울 식물을 정하고, 구매할 씨앗을 정해 선생님께 알리는 것이다. 퍽 암울했던 이전 수업 시간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어쩐지 들뜨고 신나 보였다. 어떤 식물을 키울까? 어떤 씨앗을 주문해볼까? 내 친구 하은이는 다 자라면 마요네즈에 찍어 먹겠다고 말하며 셀러리를 선택했다. 내 짝꿍 영호는 이 중에서 가장 비싼 식물을 키우겠다며 멜론을 선택했다. 앞에 앉은 석영이는 분홍색을 좋아해 딸기를 선택했다. 나는 내가 키운 꽃으로 졸업식 꽃다발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품고 라벤더로 결정했다. 그 밖에도 상추, 허브, 국화 등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다양한 식물을 골라 주문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지친 수험생을 위한 모든 희망의 씨앗들이 학교로 배달되었다.
생명과학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은 드디어 씨앗을 심는 날이다. 씨앗을 심기 전, 우리는 화분 하나씩을 예쁘게 꾸몄다. 식물에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며 안락한 집을 만들어줬다. 식물의 이름은 그 종류만큼이나 각양각색이었다. 하은이의 셀러리는 총 다섯 알의 씨앗을 심어 ‘샐럽 파이브’가 되었고, 랩을 잘하는 현이의 깻잎은 ‘룩깻잎(Look at leap)’이 되었다. 나는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라벤더에 ‘잘 자라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의외로 소중하게 꾸며진 화분들은 꼭 급식 식당의 줄처럼 교실 창가에 나란히 한 줄로 세워졌다.
교실에 화분이 생긴 뒤부터 우리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화분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는 아침이라, 점심에는 점심이라, 저녁에는 저녁이라 피곤해 쓰러지듯 쪽잠을 자던 우리였다. 그러나 화분을 갖는다는 것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아침에 처음 교실에 들어올 때 한 번, 점심때 밥을 먹고 올라와서 또 한 번, 밤에 면학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들어와 다시 한번. 그렇게 삼시 세끼 챙겨 먹듯 식물에 물도 주고 예쁜 말도 줬다. 심지어는, 혹여나 우리의 여린 씨앗들이 추위를 많이 타진 않을까 염려하며 창문도 꼭 닫고 지냈다. 그렇게 아기 씨앗들은 팍팍한 3학년 교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나흘이 지나자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인 것은 상추와 깻잎이었다. 새싹을 본 아이들은 감격에 젖은 얼굴로 인증 사진을 찍고, 온 교실을 방방 뛰어다니며 자랑했다. “내 화분에 새싹 나왔다!” 그러나 교실의 거의 모든 화분이 새싹을 틔울 때까지도, 내 씨앗만은 땅속에 꼭꼭 숨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자라지 않는 걸까? 혹시 물을 너무 많이 줬나? 혹은 너무 적게 준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내 노력이 부족했나? 환경이 잘못되었나?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나의 라벤더는 잘 자라라는 이름과 반대로 전혀 자라나지 않았다.
속상했다. 노력해도 자라지 않는 라벤더가 꼭 나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식물들이 다 새싹을 틔워 높이높이 자랄 동안, 땅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내 씨앗이 야속했다. 마치 ‘라벤더’ 자녀를 둔 학부모처럼, 생명과학 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선생님, 제 식물이 자라지 않아요.”
고작 2주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큰일이라도 난 듯 하소연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대답을 들은 후, 내 초조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품종이 라벤더였지? 라벤더는 원래 발아 기간이 길어서 다른 식물보다는 오래 기다려야 해. 인내심을 갖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렴.”
그렇다. 모든 식물이 다 한날한시에 자랄 수는 없는 법이다. 전부 각자의 때가 있는 법인데, 나는 그것을 간과한 채, 그저 다른 식물보다 조금 늦는다며 혼자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나 자신도, 나의 소중한 라벤더도 더 보채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11월이 되었다. 겨울이 되자 한동안 들끓었던 ‘식물 키우기’에 대한 열기는 가라앉았다. 수능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이 움츠릴 만큼 그 어떤 때보다도 춥고 긴장되는 하루하루였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 교실에 모인 학생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하루 만에 재수를 결심하고는 비장한 표정을 짓는 아이, 결과에 상관없이 이젠 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뱉는 아이, 슬픔을 감춘 채 묵묵히 땅을 쳐다보는 아이, 밤새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아이. 겨우 하루도 채 되지 않는 그 시간이 이 아이들의 미래와 표정을 결정지어버린 것이다. 좌절과 행복, 분노와 허무함이 뒤섞인 나날이었다.
때론 미소 짓고 때론 속상했던 수험 생활을 다 떠나보낸 지금, 이제는 그 유별난 숙제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지난 1년간 돌본 것은 식물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추위에 움츠리지 않게, 주위의 비교에 좌절하지 않게, 밑동이 썩어 쓰러지지 않게, 그렇게 자신을 소중히 보살피고 할 수 있다며 다독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유치해 보였던 ‘식물 키우기’는 전혀 유치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식물을 보살폈듯, 그 보살핌으로 하여금 식물은 우리를 보살폈다. 식물이 싹을 틔운 곳엔 늘 우리가 있었고, 우리의 마음속엔 새싹이 선물한 희망이 피어나 있었다.
*본 게시물은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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