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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글판대학생에세이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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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최우수상 - 우리 지금 만나 “앞에 계단 있어.” “거기 사람 있어.” “11시 방향에 김치, 12시 방향은 잡채.” 내 삶은 낯선 문장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위의 세 문장이 어느 상황에 쓰일 만한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다소 곤란해 할 것이다. 어느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마주해야만 비로소 발화되는 문장이 있다. 고정된 단일의 세계에 머물러서는 절대로 발화될 수 없는 문장. 서로에 대한 기꺼운 마음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문장. 앞에서 소개한 세 개의 문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한 문장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불과 일주일 만에 모든 시력을 잃었다. 이후 특수학교에 진학하여 고등학교 때까지 시각장애인의 세계에 머물렀다. 한 학급의 학생수가 10명 안팎으로 많진 않았지만 나와 같은 경..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우수상 - (발신자) 하수구에서 살았던 인어 발신자 : 하수구에 살았던 인어 안녕, 오랜만이다. 나는 원래 푸릇푸릇한 봄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건네듯 편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번 봄에는 2년 전 추운 겨울에 헤어진 오빠에게 다시 편지를 쓰려니 참 어색하다. 더구나 너는 꽃을 꺾듯 내 오른쪽 발목을 부러트린 사람이었으니까. 그치? 하지만 나는 일산병원 병상에 누워서 이제 다시는 오래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날에 대해 말하고 싶어. 그때 엄마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셨고, 나는 담담하게 평생의 꿈이었던 세계 일주가 물거품으로 되어 증발하는 걸 보고 있었지. 그때 너는 나를 때리던 그 투박한 손으로 내 다리 위에 손을 얹은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의사를 마주 보고 있었잖아. 늘 그렇듯이 나의 보호자인 것처럼 말이야..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우수상 - 겨울에 피어난 시 시를 쓰고 싶었다. 다른 화려한 문장으로 지나간 열정을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진심에 가장 가까웠던 말은 이토록 소박하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우연히 마주친 꽃 하나라도 시어로 녹여내고 싶었고, 누군가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은유로 담고 싶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낭만적인 업이었고 이상적인 삶이었다. 만약에 시인이 된다면, 진심에 몰두하고 굳이 그것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나의 시작은 이토록 순수했다. 하지만 시를 쓰고 싶은 마음과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나는 계속 시를 써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시인이 되는 데엔 번번이 실패했다. 어느새 등단이라는 제도가 창작이라는 행위보다 중히 느껴졌다. 그때부터 시를 쓰는 일은 전연 즐겁..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가위 없는 실타래 큰아빠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나를 잡아다가 영정사진 앞에다 세웠다. 보라고, 네 아비 얼굴을 잘 들여다보라고. 아마 모를 것이다. 부모와 남으로 지내본 경험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거울 속 내 얼굴이 말을 거는 것만큼 생경하다. 닮은 얼굴이 액자 하나에 갇혀있는 걸 보는 일. 그게 엄청나게 슬프다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 모든 게 스물하나 먹은 내게는 버거웠다. 울지 않았다. 혼자 나를 키워낸 엄마의 노고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죽고 나서야 나타난 나는 그야말로 돌아온 탕아였고, 나는 몹시도 비정해 보이고 싶었다. 그를 기억하는 두 언니가 우는 동안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눈앞에서 뼈가 가루가 됐다. 사람이 죽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희망을 틔우는 화분 반복되는 일상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 이것이 수험생들의 삶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새벽에 잠들기까지, 고등학생들은 오로지 입시만을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그렇게 여느 날과 같이 공부만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이상한 임무가 주어졌다. “미션, 새싹을 틔워라!” 고등학교 3학년 첫 생명과학 수업 때였다. 문과 학생들에게 과학이란, 흥미롭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섬과 같았다. 우리는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과학에 거리감을 느꼈다. 그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과학은 어렵지 않다. ‘생명과학’이라는 교과명에 충실하게, 올해 우리는 각자 생명 하나씩을 키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생명과학 성..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영광의 상처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것은 일곱 살 때였다. 구불구불한 곡선, 앙증맞게 달린 검정 기둥들, 튕길 때마다 들려오는 다채로운 소리.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날, 두 살 많은 사촌 언니가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던 그 갈색 물건에 나는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다. 언니의 악기를 냅다 뺏어 들고 이건 내가 가지겠다고 빽빽 우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악기를 처음 만난 바로 그다음 날부터, 온종일 바이올린과 함께했다. 먹을 때도, 잠들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바이올린을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연주를 마친 방 안에는 항상 내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해 한겨울에도 부채질하곤 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에는 변화가 생겼다. 손가락은 악기와 활을 잡는..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6이 7보다 큰 이유 “전교생 13명? 진짜? 대박!” 전교생 13명이라는 이 숫자가 적은 숫자라는 건 대학에 들어와서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대학 친구들은 이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또 오래 잘 아는 친구들이 있어서 부럽다고 했다. 맞다. 우리는 서로 아주 속속들이 잘 알아서 서로 의지가 된다. 각자 다른 곳에서 살아도 울고 싶을 때, 웃고 싶을 때의 순간을 함께 한다. 장점은 이것뿐만 아니다. 당시에는 숫자가 적어 교실 절반이 거의 빈 곳이기에 놀기 편했다. 또, 새로 반 편성되어 새 친구를 사귀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높고 파란 하늘과 바람에 흩날리는 초록 잎의 나무들, 그리고 그 바람에서 오는 여름 냄새가 생각난다. 그만큼 내 중학생 시절은 고맙고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 차 있..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서점이 사라졌다 서점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이월 말부터였다. 동네가 크진 않아서 다양한 분야의 서적보다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문제집 위주로 파는 서점이었다. 동네에 십 년 넘게 사는 나에게 터줏대감과 다르지 않았던 그곳. 일곱 살 때 이곳에 이사 올 때도 있었을 그곳. 거기에 다른 가게가 생기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무심코 지나왔었지만, 그곳엔 항상 그 서점이 있었다. 떠들썩한 햄버거 가게 위, 그러니까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원 바로 아래층에 그 서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서점이 사라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놓았다.’ 건물의 법칙에서는 사라진다는 걸 그렇게 부르곤 한다. 처음 그 서점에 갔을 때는 책을 사려고 간 게 아니었다. 언제 처음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확실하다. 나는 사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