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3. 18:16
인문학은 영어로 ‘humanities’예요. 이는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말'이랍니다. 그렇다면 패션을 통해 들여다본 역사 속의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하지만 주어진 정보를 선별, 분석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이성적인 모습은 여간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 동안 사람들이 너무나 가볍게, 유행에 휩쓸려왔기 때문이에요.
<영화 마리앙투아네트의 한 장면 (출처 : 네이버영화)>
당시의 프랑스 귀족은 성별 혹은 탈모의 여부와 상관없이 가발을 썼답니다. 대머리였던 루이 13세가 가발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아첨꾼들이 가발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상류사회의 유행이 되었다고 해요. 사치와 허세가 일상인 귀족사회에서 남보다 더 돋보이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눈물겨웠고, 그 결과는 점점 더 기괴해졌어요.
가발에 동물 모형을 매달거나 타조깃털을 꼽는 장식은 약과였고, 미니 정원을 만들어 올리고 거기에 진짜 꽃을 심기도 했답니다. 새장을 통째로 얻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새장 안에는 살아 있는 새를 넣고 다녔어요. 장식이 복잡해지면 서 크기도 커졌죠. 위로 90센티미터 정도는 흔한 일이었고, 1미터 50센티에 달하는 가발도 사용되었어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그 유명한 머리인 ‘아 라 벨르풀(A la belle poule, 군함을 본뜬 모형 배를 머리에 얹은 가발)’이 그 한 예랍니다. 머리의 화려함이 기괴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로 기괴한 것은 아름다움을 위한 자기희생이었어요. 1미터가 넘는 가발을 만드는 데는 많은 재료와 시간이 필요했어요. 즉, 귀한 머리였다는 것을 의미하죠. 따라서 하루 외출이 끝났다고 해서 풀어버릴 수 없었고, 몇날 며칠을 이고 있어야 했어요.
밤에는 특별히 제작된 상자로 가발을 덮고서 자야 했고, 머리를 감을 수도 없었죠. 쇠기름으로 만든 포마드와 염색한 밀가루로 형태와 색을 만든 가발은 머리 위에서 썩어가기도 했답니다. 각종 해충이 알을 낳았고, 심지어 쥐가 숨어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실제로 당시 이렇게 과도한 장식의 가발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쥐굴’이었어요. 그렇다면 가려움은 어땠을까요? 지팡이에 갈고리를 달아 그것으로 머리를 긁는 것 외엔 해결책이 없었답니다. 과도하게 크고 높은 가발을 이고 가다가, 샹들리에의 촛불이 옮겨 붙어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다고 해요. 유행의 선두에 서기 위한 자기희생, 혹은 자기파괴가 수백 년 간 이어진 것이죠.
사람뿐 아니라 동물이 유행의 희생양이 된 일도 있었는데 모든 것은 모자에서 비롯되었답니다. 영국신사의 상징과도 같은 탑햇(top hat)에서부터 군인들의 모자였던 트리콘햇(Tricorne hat)까지 당시 대부분의 모자는 동물의 털을 압착한 팰트로 만들었는데, 16세기부터는 비버털을 최고의 재료로 간주하기 시작했어요. 이는 비버의 털이 가장 이상적인 탄력과 윤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후 비버털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답니다. 유럽 전역에서 비버는 현금과 다름없었어요. 잡기만 하면 돈이 되는 상황이다 보니 순식간에 비버의 씨가 말라갔죠.
유럽에서는 더 이상 비버를 잡을 수 없게 되자, 사냥꾼들은 신대륙 아메리카로 향했어요. 동부에서 시작된 비버사냥은 미시시피 강을 건너 로키산맥 일대를 휩쓸며 서부로 향했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비버는 올무에 걸리거나 총에 맞아 죽었고, 주인을 잃은 비버의 털가죽은 영국으로 수출되었어요. 그 규모가 어느 정도였을까요? 무일푼으 로 모피사업(주로 비버모피를 수출)을 시작한 존 에스터(John Jacob Astor)라는 사업가가 당시 미국의 최고 부자였다면 설명이 될 것 같네요. 참고로 첫 항해에서 침몰한 비운의 여객선 타이타닉의 탑승자 중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사람이 존 에스터의 증손자인 존 에스터 4세였다고 해요.
사람은 유행 앞에 무기력하답니다. 패션은 이런 무기력함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줘요. 일례로 1940년 나일론 스타킹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 이틀 동안 400만 켤레가 팔려나갔다고 해요. 달리 말하면 400만 명의 여성이 같은 디자인, 같은 재질의 스타킹을 신었다는 것이죠. 유행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맹목적으로 남들과 같아지기를 갈망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남의 가발이 커지면 목이 부러지더라도 내 가발을 키워야 하고, 남이 비버 모자를 쓰면 그 동물이 멸종이 되건 말건 나도 써야 하는 것이죠. 현대 세계에서도 많이 다르지는 않답니다.
신문과 인터넷에 ‘완판녀’ 따위나 누구누구의 ‘공항패션’이 기사로 올라오면 해당제품은 품절이 되고 인기 있는 잡지는 ‘연예인 패션 따라잡기’를 다루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그만큼 따라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랍니다. 디자인이 나의 체형에 어울리는지, 색은 나의 피부톤과 잘 맞는지, 가격이 나의 경제상황에 적합한지에 대한 평가는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당장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떠밀려 구매를 결정하죠. 그렇게 사 모은 옷들이 걸려있는 옷장 속은 그에 따라 개인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시대유행의 아카이브archive적 성격이 더 강해요. 사람들은 옷을 두고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말들을 해요. 그런데 과연 나의 옷은 나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내가 쫓고자 하는 유행의 선지자들을 복제하고 있을까요?
물론 유행의 본질은 모방이랍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존 칼 플루겔(John Carl Flugel) 역시도 “유행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천명한 터이니, 타인을 모방하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답니다. 모방이 없다면 유행이 없고, 유행이 없으면 사람이든 사회든 변하지 않아요. 고립될 뿐이지요. 다만 점점 더 빨라지는 유행의 사이클에 매달려 있기 위해 정신적 혹은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돌아볼 여유를 가지는 편이 더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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