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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대로와 함께 100년의 기억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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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26. 11:05

1919년 3월 1일, 삼일만세운동 모습. 사진출처 : 국가보훈처(mpva.tistory.com)

‘한국인이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하다’

삼일운동 직후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지역지 ‘리치몬드 타임즈-디스패치(Richmond Times-Dispatch)’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수천의 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1919년 3월 1일. 삼일정신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삼일대로를 걸으며 대한제국과 고종, 한민족의 치열했던 100년 전을 느껴봤습니다.


#36년 암흑기의 시작

삼일운동은 100년 전 일본의 무단통치와 민족 탄압에 반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인 건 다들 알고 있습니다. 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날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을사오적이 나라를 넘긴 장소가 바로 창덕궁 대조전입니다. 대조전에서 열린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것이죠. 그리고 8년이 지난 1919년 3월 불같이 일어난 민족정신과 함께 세계가 놀란 삼일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창덕궁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삼일대로의 시작점인 안국역 사거리가 보입니다. 


창덕궁 입구


#삼일정신 100년의 시간을 기억하는 안국역

서울 종로 안국동 사거리에 있는 안국역에는 100년 전 함성과 열기를 담은 듯한 다양한 전시물이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독립투사들의 사진을 구성된 100년 기둥, 100년 충전소, 100년 인물문 등 독립이라는 주제로 꾸며진 안국역은 작은 독립테마관입니다. 하늘문이라는 멋진 이름이 지어진 안국역 4번출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마당로 청사 대문을 모티브로 만들었습니다. 하늘을 향한 웅장함과 독립운동의 상징인 임시정부 입구를 연상케하는 모습은 삼일대로의 시작점답습니다. 하늘문은 바로 앞에 있는 운현궁 용마루와 같은 높이에서 삼일대로로 곧게 뻗어 있습니다. 삼일대로는 이 곳에서부터 탑골공원과 남산 1호터널을 거쳐 한남초등학교까지 이어집니다.

 안국역에 세워진 100년 기둥

안국역 4번 출구 하늘문


# 흥선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던 운현궁 노안당의 모습

운현궁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거처로 고종의 생가이자 가례(결혼식)를 올린 장소입니다.흥선대원군도 이 때는 일본에 의해 가족이 모두 고통을 받을 줄은 몰랐겠죠. 며느리인 명성황후는 일본에 의해 비참한 최후(을미사변)를 맞이하며, 고종 역시도 명성황후 시해 후 일본의 강압에 시달리다 결국 1919년 1월 의문스런 죽음을 맞습니다. 순종에게 자리를 물려준 후 덕수궁에서 노년을 보내던 고종이 갑자기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종의 갑작스런 사망은 일본의 사주에 의한 독살이라는 설이 돌기 시작하며, 의혹을 키웠죠. 결국 고종의 죽음은 항일 감정이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돼. 고종의 장례식인 3월 3일에 맞춰 삼일운동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합니다. 


# 계몽 정신과 삼일운동의 강력한 후원자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경

운현궁 맞은편에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있습니다. 천도교는 1905년 동학의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 건물 앞에서 삼일 독립선언문이 배포됐습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옆에 독립선언문 배포장소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천도교는 민족정신이 강한 종파로 중앙대교당 완공을 늦추면서까지 건축비 일부를 삼일운동을 위한 자금을 대는 등 독립운동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내려오면 바로 서북학회 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북학회는 다양한 계몽운동을 통해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농림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독립전쟁을 최고전략으로 채택해 독립군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등에 주력했죠. 


# 삼일운동의 본격적인 확산

탑골공원 안에 있는 국보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

서북학회 터 옆에는 낙원상가가 있습니다. 낙원상가 아래에 있는 터널 같은 길을 지나면 탑골공원이 보입니다. 탑골공원은 세조대에 지어진 절인 ‘원각사’가 시초로 지금은 원각사지 십층석탑만이 남아있죠. 이곳은 연산군 때 음악을 관장하는 장악원으로 바뀌었고, 1890년대 중후반 경에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지금은 어르신들이 모이는 조용한 공원이지만 삼일운동 때는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장소였습니다.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받은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오등은~’은 그 때 낭독하였던 기미독립선언서의 첫 부분입니다. 

 탑골공원 입구


# 광화문으로 이어진 삼일만세운동

100년 전 수 많은 인파가 만세를 부르며 지나간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앞 칭경기념비

탑골공원에서 선언문 낭독을 마친 학생들은 광화문 쪽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위 행렬은 현재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앞에 있는 고종 즉위 40주년 축하 칭경기념비(왕의 경작행사 기념비)를 거쳐 덕수궁 쪽으로 향했습니다. 고종의 장례식과 맞물려 100년 전 삼일운동은 200만명 이상이 참여한 세계에서도 유례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규모 민족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 됩니다. 

# 국민이 지킨 100년, 우리가 이끌 100년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

2019년, 올해는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는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이 세워졌습니다. 오는 4월 30일까지 광화문 광장에 설치돼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을 작성, 낭독하고 삼일운동 100주년 배지 등 기념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희망 메시지를 작성해 홍보탑 안에 넣을 수도 있죠. 모두 예약없이 현장에서 바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창덕궁에서 안국역,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서북학회터, 탑골공원, 그리고 칭경기념비와 홍보탑에 이르기까지 걸으며 느껴보는 100년을 기반으로 앞으로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시작을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교보생명 공식블로그 가꿈사 크리에이터 이정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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