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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임정이야기 2편] 위기의 임정, 자싱에서 다시 뭉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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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4. 14:18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 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의 급습을 받습니다. 다행이 많은 요인들이 몸을 피했지만, 안창호 선생은 체포돼 국내로 압송됩니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정부 문서들이 일제에 탈취당했죠. 일제를 피해 임시정부는 항저우로 이동했으며, 김구 선생은 이동녕, 엄항섭, 김의한 등 일부 국무위원들과 자싱(가흥.嘉興)으로 피신합니다. 위기에 빠진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과 주푸청(褚輔成)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다시 모여 전장으로 이동합니다. 그 현장을 가꿈사가 찾았습니다. 


김구 선생 현상금만 ‘60만원’  

홍커우 의거로 일제가 김구 선생에게 내건 현상금은 ‘60만원’. 당시 쌀 한 가마 가격이 13원 정도였으니 어림잡아도 80억 원에 가까운 돈입니다.(일부에서는 200억원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까지 현혹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죠.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자싱으로 이동한 것은 중국 국민당과 밀접한 관계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이 체호 위기에 처하자 중국 국민당 장제스 총재는 “백범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당 간부이자 상하이 법대 총장, 저장성장 등을 지낸 자싱의 유력인사 추푸청이 그 중책을 맡은 것이죠. 추푸청은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에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겁니다. 심지어는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며느리인 주자루이에게 동행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김구 선생이 중국인으로 보이도록요. 후에 김구 선생은 주자루이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은 글을 전합니다.  또한 추푸청은 1997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됩니다. 

김구 선생의 피난처 옆에 추푸청 기념관이 함께 있습니다. 추푸청이 어떤 인물이고 이 곳에서 김구 선생을 어떻게 도왔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자싱에서 생활하며 가명을 사용하였고, 추푸청의 수양아들 소유인 별채에 머물렀습니다. 이곳이 바로 매만가 76호입니다. 2층 목조건물로 1층은 접견실 겸 식당으로, 2층은 침실로 꾸며져 있습니다.

  

좁은 나무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김구 선생의 방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바닥에 뚫려 있는 구멍, 비상통로인데요. 유사시 탈출하기 위한 비상탈출구입니다.

 

이 곳을 내려가면 바로 나룻배로 이어집니다. 급박한 상황에 배를 타고 호수로 피신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실제로 김구 선생은 선상 생활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위기가 많았다는 것으로 현장을 보며 일제를 피해 피말리던 생활을 하던 당시 상황과 그런 와중에도 굳건히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김구 선생의 의지를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대를 이은 독립운동가족사도 함께

자싱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렀던 장소도 있습니다. 김구 선생 피난처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매만가 일휘교 17호에 있는 2층 건물로 임시정부에 대한 전시가 있어서 가흥에서의 독립활동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도 추푸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뒷줄 왼쪽에서 첫번째가 추푸청이며, 그 옆이 엄항섭 선생, 세번째가 김구 선생입니다. 김구 선생 오른편으로 박찬익, 이동녕, 김의한 선생이 보입니다. 

갓난 아이부터 어른들이 함께 담겨있는 사진을 보며, 당시 저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곳까지 숨어들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왼쪽부터 김자동(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엄기동, 엄기선(이상 엄항섭의 자녀)으로 부모님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깁니다. 

 

삐걱거리는 좁디 좁은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누추하지만 포근한 침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금은 보수과정을 거쳐 깔끔해 보이지만 넓지 않은 방이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일제 치하를 벗어나 다시 나라를 찾은 광복절입니다. 2019년은 74주년 광복절임과 동시에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하고요. 나라를 잃고 당장의 내일 일제에 붙잡힐지도 모를 정도로 불안하고 열악한 피난 상황 속에서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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