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요, 사랑/광화문글판
2020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 서점이 사라졌다 2020. 6. 18. 15:39

   서점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이월 말부터였다. 동네가 크진 않아서 다양한 분야의 서적보다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문제집 위주로 파는 서점이었다. 동네에 십 년 넘게 사는 나에게 터줏대감과 다르지 않았던 그곳. 일곱 살 때 이곳에 이사 올 때도 있었을 그곳. 거기에 다른 가게가 생기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무심코 지나왔었지만, 그곳엔 항상 그 서점이 있었다. 떠들썩한 햄버거 가게 위, 그러니까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원 바로 아래층에 그 서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서점이 사라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놓았다.’ 건물의 법칙에서는 사라진다는 걸 그렇게 부르곤 한다.

   처음 그 서점에 갔을 때는 책을 사려고 간 게 아니었다. 언제 처음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확실하다. 나는 사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지지리도 싫어했으니까. 책이 아니라 문제집을 사러 갔었다. 서점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왼쪽에 있는 매대에는 모두 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학원에서 문제집을 사 오라는 말에 거기서 문제집을 샀다. 나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혹은 학부모로 보이는 어른들이 그곳을 맴돌며 문제집을 찾았다. 바로 그 매대에서 뒤로 돌면 다른 풍경, 혹은 다른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게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책이 문제집으로 보이던 나의 세계가 바뀌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영화 ‘동주’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처음 보는 흑백영화가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갔던 것일까? 그때 나는 떠올렸다. 쓰는 것, 그것을 해보고 싶다. 읽는 것에도 관심 없어 기피하기 일쑤였던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쓰는 것이었다. 쓰기 위해서 읽는 것은 필수였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그때 처음으로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하지만 내 성격은 빌려서 보는 게 아니었다. 정당한 대가를 주고 책을 사서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그래서 그 서점에 가게 되었다. 문제집이 아닌, 진짜 책을 사기 위해.

   그 이후로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면서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책을 읽었다. 책을 사는 경로가 많다는 것도 알았고, 인터넷으로 사면 엄청 편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는 내킬 때마다 장바구니에 담고 배송을 눌러 하루 이틀 정도를 기다려 책을 받았다. 서울의 대형서점을 찾아가서 책을 쓸어 담아 온 적도 있었다. 대형서점에서 느껴지는 거대함과 수많은 사람, 그리고 웅장한 규모의 책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위기에 매료돼서 어느 곳을 가든 서점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동네에 하나뿐인 그 서점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네 서점은 말하자면 예측불허의 장소였다. 소설가 김영하는 서점에 가는 이유는 우연 때문이라고 했다. 서점에는 어떤 책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사려던 책을 못 살 수도 있지만, 뜻 밖에 내 취향에 맞는 책을 발견할 수도 있게 해주는 신비한 장소였다. 대형서점은 인터넷으로 책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체계가 없는 동네 서점은 전화가 아니면 어떤 책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점이 좋았다. 갈 때마다 새로운 책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둘러보고 둘러보며 어떤 책이 있나 찾아보는 것은 캄캄한 동굴을 탐험하는 것처럼 떨리기도 했다. 내가 발견한 풍경은, 아니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매대에 들러붙어 이리저리 웅크리고 고개를 숙이며 책의 이름들을 훑었다. 때론 친구와 같이 가서 서로 관심 분야의 책을 살피기도 했고, 한 번은 중학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다. 아는 책이 있으면 기분이 묘했고, 모르는 책이 있어도 좋았다. 집 근처에 수많은 책의 이름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서점이 있다는 건 나에게 그런 즐거움을 주었다.

  그 서점에 자주 가게 되면서 주인의 얼굴도 익히게 되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의 주인은 내가 야자를 끝마치고 서점에 들르는 아홉 시쯤에는 한가하게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 서점에 들르는 사람은 거의 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없나요?” “이 책 주문할 수 있을까요?” 같은 단순한 말밖에 나누지 못했지만, 그는 나를 이 서점에 자유롭게 풀어두었다. 나는 때론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때론 풀냄새를 맡는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책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십 분에서 길면 삼십 분 동안 서점에 서성거렸다.

  그렇게 서점에 다니던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자주 책을 샀고 종종 글을 썼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동네 서점에는 거의 들르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동네에 ‘책방’이 생겼다는 점이다. 우연히 버스정류장이 있는 상가 앞을 지나고 있는데, 세움 간판에 ‘책방 open’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걸 보고 까무러치게 놀랐다. 사층에 간판 없는 책방이 운영 중이었다. 책방은 서점과는 다르게 스터디나 모임을 진행할 수 있게 공간을 대여해 주거나 빵이나 음료수를 만들어 파는 카페와도 같은 곳으로, 요즘에는 출판사들이 동네 책방 한정판을 발간하거나 북클럽 이벤트를 진행해 책방은 출판시장에서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가게가 들어선 게 믿기지 않았던 나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소하지만 소중한 기억을 갖게 해준 그 서점을 잠시 잊어버렸다.

  마치 친구에게 빌렸다 깜박해버린 책처럼 그 서점을 떠올린 건 겨울이었다. 방학이라 여유가 생겨서 서점에 들렀다. 서점의 간판은 언제나처럼 누렜고, 바깥 창문으로는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크게 변한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점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책이 안 팔린다는 뜻이니까. 나는 전처럼 이리저리 매대를 살폈고, 그때 있던 책들은 지금도 여전히 꽂혀 있었다. 읽지는 않았지만, 무수히 많이 읽어본 이름들. 나는 이 이름들을 다 데려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어르신과 서점 주인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은 책이 잘 팔리나?”
   “아뇨 항상 어렵죠. 뭐…….”

    요즘 책은 안 팔리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책방도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공간 대여와 음료수를 파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며 가만히 듣고 넘긴 이 일상적인 대화는 나에게 뒤늦은 후회로 다가왔다.

   다음에 찾아왔을 때는 그 서점에도 세움 간판이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open’이 아니라 ‘재고정리’라고 쓰여 있었다. 지나가던 길에 본 그 글자는 내가 서점으로 가는 계단에 발을 올릴 수밖에 없게 했다. 밖에서는 불이 켜져 있었는데 서점 문은 닫혀 있었다. 쉬는 날이 아닌 걸 알았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손잡이를 잡아봤더니 움직이길래 문을 열었다. 서점 안에는 책을 쌓은 카트와 쓰레기들, 그리고 텅 빈 매대, 그런 것들만 있을 뿐이었다. 창문을 열어두었는지 바람이 흰 벽을 타고 지나갔다. 이 공간이, 좁게만 느껴졌던 서점이 교실 하나와 맞먹을 정도로 큰 공간이었나? 책이 없는 서점은 텅 빈 것 같았고,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서점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있어서 나는 말없이 문을 닫고 다시 계단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날.

  그날도 똑같이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올라갔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냥 그 풍경만 보고 다시 갈까 했는데 뒤에 엄마와 아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오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서점 주인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저번에 살까 말까 고민했던 책들이, 이제는 간절히 데려가고 싶어진 그 이름들이 남아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없다고 했다. 책은 거의 없었고, 주로 판매되는 문제집 몇 권만이 카트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바람은 더 강하게 불었다. 뒤에 따라온 모녀는 가게가 없어지는 거냐고 물었다. 입간판을 보지 못하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주인이 그렇게 됐다고 하자 그럼 문제집은 어디서 사냐고 아쉬운 말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그들을 따라 조용히 서점을 나왔다. 서점을 나오면서 문득 ‘책의 운명’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파쇄 공장. 팔리지 않아 버려지는 책들이 쌓인 산. 기계의 짓눌림에 찌그러지고, 파쇄된 뒤 낙엽처럼 흩날리는 책들. 어쩌면 그 서점이 있었기에 이제야 무언가를 쓸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르는 나는, 지금 그 서점의 끝을 쓰고 있다. 임대 딱지가 붙어버린, 이젠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그 서점에서, 수없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곤 했던 나는 살아있는 무언가와 이별하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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