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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글 큰 선생님을 만나다 ‘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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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8. 18:22

날이 너무 좋은 가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려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알찬 프로그램들이 많고, 우리가 몰랐던 한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서울지하철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를 나와 국립중앙박물관을 지나면 한글박물관 입구가 보입니다. 


한글로 나라를 지킨 ‘말모이’

가꿈사가 한글박물관에 방문한 이유는 개관 5주년이자 한글날을 맞아 열린 기획전시 '한글의 큰 스승' 전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태어난 한글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습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어낸 한글이 수 백년 동안 수 많은 위기를 겪으며 지금까지 이어진데에는 새로운 한글의 쓰임새를 확장하고자 노력한 이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특히나 일제 강점기 때가 가장 큰 위기였죠. 목숨으로 한글을 지킨 이들이 만든 게 바로 ‘말모이’입니다.  


영화로도 제작이 돼 친숙한 이름이기도 한 ‘말모이’는 1911년부터 주시경과 그의 제자 김두봉, 이규명, 권덕규가 집필한 우리말 최초의 사전 원고입니다. 완성 단계에서 사전을 출간하지는 못했지만, 현재 울림말 'ㄱ'부터 '갈죽'까지의 원고가 남아 있어 사전의 체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완성본 그대로의 사전이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졌다면, 현재 우리말로 쓰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종류가 더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품으로 한글 사전을 남긴 후원자 정세권

말모이 같은 사전과 한글이 서슬퍼런 일제 치하에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국적을 가리지 않은 사람들의 후원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세권은 일제시대 경성의 3대왕(유통왕, 광산왕, 건축왕)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가 만든 한옥은 인기가 많아, ‘건축왕’으로 불릴 정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죠. 하지만 정세권은 모은 돈을 조선어학회 등 여러 민족운동 단체를 후원하는데 썼습니다. 그가 세상을 뜰 무렵 그에게 남은 것은 작은 쌀되 하나와 생필품 몇 가지, 한글학회가 완간한 ‘큰사전’ 등 청빈한 생활을 했죠. 전시회에 가면 건축왕 정세권의 마지막 유품인 쌀되와 쌀 홉되, 큰 사전을 볼 수 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그의 삶과 정신은 유품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듯 합니다. 


한국인보다 더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 호머 헐버트

헐버트가 쓴 ‘마법사 엄지’ 와 군밤 타령 악보

선교사이자 언어학자인 호머 헐버트는 누구보다 한국 문화를 아끼고 사랑한 인물입니다. 무려 20년을 한국에서 지냈죠. 한글이 말소리가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발음 기호가 필요 없는 우수한 문자라는 점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의 한글 사랑은 '마법사 엄지'라는 동화집 출간으로 이어지죠. ‘마법사 엄지’는 미국 어린이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별주부전을 각색한 전래동화집입니다. 헐버트는 '군밤 타령'과 ‘아리랑’처럼  구전돼 내려오던 민요를 영문 악보로 남기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었습니다. 우리의 얼이 서려있는 아리랑을 지금까지도 부를 수 있었던 이유에 외국인 헐버트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그에게 붙은 '한국인보다 더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이라는 수식어가 이해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글로 사회적 편견에 맞선 장계향

장계항은 여성 사회자선가로,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지었습니다. ‘음식디미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국수, 만두, 떡 등의 면병류를 비롯해 146가지의 조리법과 식재료 보관법이 상세히 실려있죠. 여성이 한글로 쓴 조리서이자 우리나라 전통음식 연구의 교과서이며, 17세기 우리말 실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성 활동에 온갖 제약이 많았던 조선시대에 '우리 전통음식'과 '17세기 우리말 실상'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만든 그의 비범함이 책 속에 녹아있는 듯 합니다.  


한글로 새로운 시대를 펼친 박두성과 공병우

박두성은 시각장애인이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운 한글로 된 점자인 '훈맹정음'을 만들었습니다. 자음과 모음, 숫자도 다 들어가 있으며 배우기 쉽고, 점 수효가 적고, 서로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는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해 만들어진 한글 점자책이죠. 

1913년 조선총독부 내 제생원 맹아부 교사생활을 하면서부터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한 박두성은 '눈이 어둡다고 해서 마음까지 어두워선 안 된다'며 항상 배움을 강조했습니다. 덕분에 그의 시각장애인 제자들은 한글을 익히며 스스로 자립해 사회 일원으로 생활할 기반을 닦았습니다. 전시장에는 한글 점자를 연습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 있어, 점자 원리를 재미있게 익힐 수 있습니다. 



공병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 개인병원 '공안과' 의사로,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쌍꺼풀 수술 진행, 콘택트렌즈를 도입한 안과계의 선구자이자 한글 세벌식 타자기도 개발한 발명가이기도 합니다. 

공병우가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온 국어학자 이극로를 만나면서 입니다. 성격이 급해 구두도 뒤축을 꺾어 신을 정도 였는데, 한글 타자기를 빨리 치기위해 세벌식 타자기를 개발했죠. 한글에 관심을 가진 이후에는 일본 '가나'로 만들어진 시력 검사표에 문제를 느끼고 한글 시력 검사표를 만들기도 합니다. 

전시물 중에 공병우 세종 한영 타자기가 있는데 모음자인 ㅘ, ㅚ, ㅝ, ㅟ를 한 번에 입력할 수 있게 글쇠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급한 성격 덕분에 한글 기계화와 정보화의 근간이 마련됐습니다. 시간을 아끼고자 노력한 것이 빠르고 편리한 한글 타자기라는 결과물로 이어진 것이죠.


가을 산책을 즐기기도 좋은 한글박물관

한글박물관을 나가는 길에 오른쪽을 보면 작은 오솔길이 있습니다. '박물관 오솔길' 이라는 푯말이 작게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가을 산책을 하기 좋습니다. 친구나 연인, 가족과 함께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바퀴 돌아보면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글의 큰 스승’전을 둘러보면서, 세종 때 만들어진 한글의 편리성, 실용성 등의 여러 요소들을 알아채고 이를 발전시키고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힘쓰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무척 놀랐습니다. 우리가 쓰는 한글이 지닌 가치와 역사의 소중함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요. ‘한글의 큰 스승’ 전을 돌아보고, 우리 한글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도 한글을 잘 지키고 발전시켜 후대에 아름답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문자로 전달할 수 있도록요.


제3회 한글실험프로젝트 <한글의 큰 스승>전

전시기간: 2019.9.30.~2020.3.8.

전시장소: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홈페이지: www.hangeul.go.kr

문의전화: 02-2124-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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