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늘 아쉬움만 남깁니다. 봄은 조용히 다가오고, 가을은 소리없이 지나가죠. 봄은 꽃을 피우고, 생명을 만들고, 열매를 남기지만, 가을은 모두 버리고 떠나갑니다. 어느 시인은 가을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단풍 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도종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시 한 편을 마음에 담고, 저희 가족은 얼마 전 충남 아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아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추천하는 아산 여행지 몇 곳을 소개해 드릴게요. 


아름다움과 안타까움이 어우러져 더욱 빛나는 공세리 성당

아산에서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곳은 공세리 성당입니다. 공세리 성당은 1894년에 건립되어 12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순교성지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근대 고딕양식인 조적조(벽돌을 쌓아 만듦) 건물로 현재까지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죠. 

영화나 드라마, CF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에 직접 방문을 해서 보니 사진과는 다른 쓸쓸한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계절 탓일까요? 아니면 이국적인 풍경 탓일까요? 천주교의 탄압과 박해를 견디며 희생된 순교자들의 정신이 성당을 둘러싼 고목의 뿌리처럼 굳세게 뻗은 듯 했습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평소처럼 들뜨지 않고 경건한 모습을 보여 줬어요. 

공세리 성지 성당의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고풍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성당 실내 규모는 작은 편이었지만 숭고함과 성스러움은 크기와 관계 없는 듯 큰 울림을 주었어요. 성지성당 박물관도 성당과 마찬가지로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는 하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천천히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내부에는 이 성당과 사제관을 직접 설계하고 공사한 드비즈 신부님의 유품과 유물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견뎌온 천주교인들의 강인한 정신과 뜻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공세리 성당과 그 주변을 둘러보는 데에는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이왕이면 방문객이 많지 않은 아침 시간을 추천합니다. 성당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주변 정취를 깊게 감상하실 수 있어요. 


주소: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공세리성당 

관람시간: 월~ 토 오전10:00 ~ 오후 4:00(매주 월요일 휴관)


노란빛으로 물든 곡교천 은행나무길

두 번째 장소는 공세리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곡교천입니다. ‘은행나무 길’로 유명한 핫스팟인데요, 노란 은행잎이 비처럼 떨어지기를 기대하고 갔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 은행잎이 남아 있었습니다. 길 바닥에 쌓인 낙엽 밟는 재미와 그 소리를 들으며 늦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어요. 

은행나무길은 ‘자전거 타기’와  ‘걷기’ 두 가지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데요,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저를 빼고, 다른 가족들은 공영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가벼운 라이딩을 즐겼습니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타고 강물을 따라 달려 보는 것도, 혼자 걸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거리 공연과 지역 장터를 둘러보는 것도 모두 좋으니 여건에 따라 선택해 보세요. 


은행나무길 자전거 대여소 운영안내

운영시간: 09:00~18:00

대여기준: 1인당 1대, 2시간 이용 (2인 커플 자전거, 여성용, 아동용, 생활용 MTB형, 장애인용 등 다양한 자전거와 헬맷 구비)


이순신의 기상만큼 빛나는 곳, 단풍이 절정인 현충사

아산에서 세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은행나무길 끝에 맞닿아 있는 현충사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기상과 충심을 기리는 곳이죠. 현충사는 충무공의 삶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노량 해전에서 전사하고 100년이 지난 후에야 충무공의 공로가 인정되어 현충사가 지어졌습니다. 아산과 인근 지역 유생들이 모여 조정에 상소해 사당을 건립했고, 숙종이 직접 현판을 내렸다고 해요. 하지만 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현충사는 헐리게 되고, 몇 해 뒤 을사늑약에 분노한 유림들에 의해 재건립 되었다가 일제 치하에 충무공의 묘소와 위토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집니다. 전국에서 이를 지키기 위해 기금이 모아졌고, 1932년 현재의 위치에 구 현충사를 옮기게 되었답니다. 

사실 저희 가족은 현충사에 대한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들렀습니다. 들러보니 이곳이야 말로 ‘가을 여행의 성지’가 아닌가 싶었어요. 현충사 초입부터 시작된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 곳곳에 자리잡은 오래된 수령의 나무들이 계절을 온몸으로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가장 황홀한 빛깔로 생의 절정을 보여주는 나무들의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어요.


주소: 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관람안내: 동절기(11월~ 2월)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요금: 무료

홈페이지: hcs.cha.go.kr 

문의: 041-539-4600


#이순신을 톺아보며,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현충사의 가을 비경을 실컷 감상하고 내려오면 현충사 초입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중 하나인 난중일기 초고본(국보76호)과 임진장초(임진왜란과 관련된 보고문서), 서간첩(충무공이 조카에서 쓴 편지), 이순신의 무과급제 교지와 충무공증시교지의 복제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도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거리며 기념관을 돌아봤어요. 



  


  


그 중 가장 눈길을 끈 전시물은 보물326호인 ‘충무공장검’이었습니다. 길이가 무려 197.5cm에 달하고 무게만 4kg이 넘는 이 칼은 실제 싸움에 쓴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마음을 가다듬는 용도였다고 해요. 이순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허리에 찬 긴 칼과 용맹하고 웅혼한 기상인데요, 충무공장검의 칼날 한 면에는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뜻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충무공의 신념과 의지, 강직함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장검을 보는 아이들의 눈에도 이순신의 기개가 서린 듯했어요.

지나가는 가을이 아쉬워서 붙잡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떠난 당일치기 아산 가족 여행. 촘촘한 계획이 없이도 하루면 넉넉하게 둘러볼 수 있어 좋았는데요, 행여라도 가을이 지나가는 것을 놓칠 새라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여정이었지만 피곤한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걷고 또 걷고, 가다가 서서 멈추고 돌아보고, 다시 걷고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하루가 꽉 찬 느낌이었어요. 가을은 짧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길게 기억되겠죠. 늦가을 어귀에서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니 시인이 말한 ‘방하착’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도 같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11월, 아산으로 가을을 배웅하러 떠나보세요. 아쉬움을 달래실 수 있을 거예요. 


Posted by 교보생명 교보생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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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곡교통 2019.11.29 0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지마세여~ 차막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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