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일부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부분인데요, 여기, 서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일반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이 되고 있는 곳, 서울 효창공원(이하 효창공원)입니다. 이 곳에는 백범, 삼의사, 그리고 임시정부요인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 효창공원은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조선 왕실의 효창묘가 효창공원으로 되었는지 그 과정을 함께 살펴볼까요?


# 조선 왕실의 묘지, 효창묘

효창묘 이야기가 적혀있는 조선왕조실록, 이미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DB 캡처

효창공원의 첫 시작은 정조의 효창묘 조성이었습니다. 후궁인 의빈 성씨의 첫아들이었던 문효세자는 정조의 많은 총애를 받았으나 이른 나이에 병으로 죽고 말았으며, 의빈 성씨 역시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정조는 친히 효창묘에 장사를 지내 다섯 살 아이의 죽음을 기립니 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정조가 문효세자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요, “문효세자를 효창묘에 장사를 지냈다. 이날 새벽 발인을 하였는데, 임금이 홍화문 밖에 나와 곡하고 전별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조는 재위기간동안 총 20번 이 곳을 찾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데요. 이후 순조의 후궁도 이곳에 묻히는 등 효창묘는 왕실의 묘지로 계속 활용됩니다.

1870년(고종 7) 효창묘는 효창원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 동안에 일본군이 효창원 인근에서 야영을 하며 숲이 훼손되기도 하였는데요, 1924년에는 공원 용지로 책정되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왕조의 흔적들이 훼손되었습니다. 1940년 조선총독부가 정식으로 공원이 변경시키고(효창원->효창공원) 결국 1944년에는 효창원이 고양시의 서삼릉으로 이전되기에 이릅니다.


# 왕조의 묘지에서 독립운동가의 안식처로

광복 70주년 기념광장 기념물

1946년, 광복이 된 조국으로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유골이 돌아왔습니다. 환국한 이 유골은 효창공원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장례식 행렬은 백범이 말하길 ‘한성이 생긴 이래 처음 보는 장관’이라 하였는데요,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고 삼의사를 함께 모셨으며, 이곳으로 장지를 정한 백범 역시 1949년 이곳에 잠들게 됩니다.

이후에도 효창공원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1960년에는 효창운동장이 생기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된 곳이라는 인식이 옅어지기 시작하였으며, 1969년 8월에는 원효대사의 동상이, 동해 10월에는 반공투사위령탑도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에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고 1990년에는 순국선열 7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가 건립되었으며 2002년 백범의 유업을 계승하고 추모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백범김구기념관이 효창공원에 개관하는 등 뜻을 기리기 위한 작업들이 지속되고 있는 서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느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장소임은 분명합니다. 


# 다시, 오늘의 효창공원에 가다

효창공원은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6호선과 경의중앙선의 환승역인 효창공원앞역 2번출구에서 내려 2016번 버스로 환승한 다음, 두 정거장 뒤인 효창공원삼거리, 윤봉길의사등묘역 정거장에 내리면 됩니다.

효창공원에는 크게 임정요인묘역, 삼의사묘역, 의열사, 이봉창의사동상, 백범김구묘역, 그리고 백범김구기념관이 있습니다. 


1. 임정요인묘역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임정요인묘역입니다. 이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으로 활약한 임정 주석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이석의 묘역입니다. 이동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에 참여하였고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을 조직하는 한편 의정원 의장, 국무위원, 주석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1940년 중국 치장에서 세상을 떠났고, 1948년 백범의 주선으로 사회장으로 봉환되었습니다.

조성환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차장으로 있었으며 만주 북로군정서에서 군무부장을 역임하면서 청산리전투 등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광복군 창설과 활동에도 크게 기여하였고, 1948년 서거하였습니다.

차이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창간에 기여하고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임시의정원의원,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45년 중국 충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8년 백범의 주선으로 사회장으로 봉환되었습니다.


2. 삼의사묘역

삼의사 묘역

발걸음을 삼의사 묘역으로 옮겼습니다. 이 곳은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의 의사를 모신 묘역입니다. 


안중근 의사 허묘

삼의사 묘 왼편에는 1910년 3월 중국의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도 있습니다.


효창공원은 곳곳에 걷기 편한 데크가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봄날 산책을 즐기기에 제격인 곳입니다.


3.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

이곳은 효창공원 내 묘역이 있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입니다. 1988년 효창공원 정비 때 건립을 추진하여 1990년에 준공되었는데요, 2016년부터 상시로 개방되어 평일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의열사 내부에는 우리나라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동녕, 김구, 차이석, 조성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이상 7인 독립운동가의 초상화와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바로 밖으로 나오면 이봉창의사의 동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봉창의사는 여기 안장된 독립운동가 중 유일하게 고향에 묻힌 분인데요, 잘 아는 것처럼 이 동상은 1932년 1월 도쿄에서 히로히로에게 폭탄을 투척할 때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멀리서 보아도 기백이 느껴집니다.


4. 백범 묘소와 백범김구기념관

1949년 국민장으로 봉안된 백범의 묘소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과 내무총장, 국무령 등 주요 요직을 거쳐 주석에 이른 백범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광복 이후 국내로 환송된 독립운동가들의 장지를 직접 마련했던 백범은 아이러니하게도 10년도 되지 않아 이곳에 영원히 잠들게 됩니다. 

 

묘소 옆에는 백범김구기념관이 위치해있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은 백범의 유업을 계승하고 추모사업을 하는 한편 전시와 교육 등으로 그 뜻을 널리 알리는 곳인데요, 현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전략’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100년 전 오늘, 대한의 독립을 위한 임시정부가 여러 사람들의 의지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뜻을 기반으로 광복을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따스한 4월, 효창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면서도 대한의 기원이라는 지식을 찾는 특별한 발걸음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를 통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효창공원]

위치: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177-18

대중교통: 효창공원앞역 2번출구 도보 13분 혹은 버스 1회 환승



Posted by 교보생명 교보생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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